:: 천국 노마드 - 인도네시아 이용규 선교사 웹사이트입니다. ::
안녕하세요..저는 사랑의교회 청년부, 이재영 형제입니다..^^

이용규 선교사님께서 쓰신 '내려놓음'과 '더 내려놓음'의 책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또한 기도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정리해보았는데요..이 곳 게시판에서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

아래에서 내려놓음에 대한 저의 묵상을 나눕니다..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혹시 제 글에 대해서 의견이나 생각을 나누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제 블로그에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urjoshu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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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그 의미와 실패의 이유





1. 서론



내려놓음의 실패의 문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내려놓음의 의미와 이용규 선교사님께서 '더 내려놓음'을 통해서 나누어주셨던 '자기의'와 '자기애'의 문제를 짚고 들어가고자 한다.





1) 내려놓음의 의미



내려놓음이란 단순히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용납하는 것을 의미하는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적극적으로,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나의 나에 대한 주인됨", 즉 나의 주권을 완전하게 비워서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주권의 행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나의 마음의 문제, 삶과 현실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에 대하여 나의 판단과 생각의 능력에 의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심리적 불안감, 두려움, 의심, 마음의 상함의 문제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의 삶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나의 능력과 노력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에 의지하는 태도가 바로 내려놓음이다.



예를 들어, 일상의 순간에 삶과 미래의 문제에 대한 근심과 걱정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이러한 근심과 걱정으로 인해 두려움과 초조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산책을 하거나 다른 외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노력해보지만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마음은 더더욱 그 문제에 메이게 되며 시간이 지나 잊혀질 수도 있지만, 이것은 두려움을 단지 덮어두는 것 뿐이지 완전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때에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이 두려움의 문제를 맡겨야 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적인 권능이 그러한 두려움을 물리쳐주시도록 간구하는 것, 그것이 두려움에 대하여 내려놓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서, "나의 사랑"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기서 "나의 사랑"이란 "나의 힘에 의한 사랑"이다. 나의 힘에 의지하는 사랑은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질투, 상처 및 낙심으로 인해 나의 힘에 의존하는 사랑의 능력은 오래도록 동행하며 인내하며 품는 사랑이 되지 못한다. 때때로 이러한 노력에 의한 사랑은 나의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나의 노력에 의한 사랑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의 능력을 의탁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의 능력이 온전히 임하여 그 주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대한 내려놓음이다.



두려움과 사랑의 문제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은 죄의 습성상 스스로의 노력이나 외적인 수단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취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그 문제를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할 때, 인간의 마음은 더욱 그 문제에 매이게 되며 실질적으로 이것은 "죄로 인한 부자유" 상태에 구속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나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으로 체험되지 않을지라도 믿음으로 주님께 나를 맡기며 나의 불안, 의심, 두려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능이 오직 주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주께 구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의 문제는 또한 "우선순위의 원칙"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내려놓음은 믿는 자의 노력과 수고가 모두 헛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믿는 자의 노력과 수고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을 우선적으로 용납하고 나의 마음의 가장 높은 자리를 주님께 내어드렸는 가라는 우선 순위의 문제로도 구체화 될 수 있는 것이다. 내려놓음은 나의 노력과 수고를 모두 헛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려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2) "더 내려놓음"의 의미



이용규 선교사님께서 '더 내려놓음'을 통해서 나누고 계시는 '자기의'와 '자기애'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잠시 짚어보고자 한다. 참고서적은 열린교회 담임목사이신 김남준 목사님의 거룩한 신학 시리즈 1의 〔자기 깨어짐〕(생명의 말씀사, 2006) 이다.




구원을 통해 거듭난 신앙인은 비록 죄의 종노릇 하였던 신분으로부터는 자유롭게 되었으나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옛 본성"은 구체적으로 "자기의"와 "자기애"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거듭난 자에게 성령께서 이루시는 거룩한 성품과 갈등과 투쟁, 다시 말해서 내적인 전투의 상황을 일으키는 주체이다.



(1) 자기애



자기애는 한 마디로 "죄에 대한 사랑" (자기깨어짐, 35p.)이다. 자기의 욕심을 소중히 보호하고 사랑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구하는 죄로 인한 경향성이다. 그 소중한 욕심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그 욕심과 배치가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용납할 수 없게 된다.




(2) 자기의 (자기깨어짐, 88p.~90p.)



자기의는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정신이다.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정신' (self-righteous spirit)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으로 자신을 높게 생각하는 경향성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교만'이라는 죄의 성향과도 일치한다.  



자기의를 신뢰하는 정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죄를 가볍게 여긴다. 자기 자신을 마땅한 분량보다 높이는 사람은 그 만큼 죄를 가볍게 여긴다. 신자의 경우에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총체적인 고백으로는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내면과 삶 속에서 역사하는 죄는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결과로 비롯된 것이다.



둘째, 자신을 정당화한다. 신앙인의 경우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기는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이 철저히 부패하고 무능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따라 적당한 합리화를 허용하는 신앙생활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3) "더 내려놓음"의 신학적 의미 - 자기 깨어짐 (De Paenitentia, 24p.~25p.)



김남준 목사님게서 소개하시는 자기 깨어짐에서 '자기'는 신앙인 안에 남아 있는 '자기의'와 '자기애'와 같은 죄된 옛 본성을 일컫는 것이고, '깨어짐'은 '생명이나 기능, 혹은 작용을 잃어버리도록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가 죄에 대하여 죽어가고 의에 대해서 살아나는 과정이라면, 자기 깨어짐은 바로 죄에 대한 죽음의 실행 과정이다. "더 내려놓음"은 이와 같이 "죄의 깨어짐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려놓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방해하는 나의 주권성을 내려놓는 것이고, 이러한 내려놓음의 태도는 바로 나의 주인됨을 사랑하고 합리화하려는 '자기의'와 '자기애'의 죄된 본성을 깨뜨리기 위한 실천의 시작인 것이며 회개의 시작이다.



그러나 내려놓음의 의미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실제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이것 또한 죄로 인한 도전을 넘어서야 하는 것인데, 내려놓음의 실패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막연한 두려움. 둘째,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상함 또는 상처이다.




2. 막연한 두려움




1) 막연한 패배의식: 내려놓음 이후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




내려놓음의 결단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함에 있어 주변의 상황과 현실에 대한 육신의 눈을 닫고, 자신만의 고요한 순간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한 선택은 이제까지 육신의 눈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왔던 습관을 포기시키는 것이므로 익숙함으로부터 멀어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따르기 쉽다. 또한 마치 눈을 감으면 주변의 상황에 대하여 인식할 수 없으므로 어떠한 위험이 존재하는 지 분별하지도 못한다. 그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하여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므로 또한 이로인해 두려움이 수반될 수도 있다.



이러한 막연한 두려움에 붙들려 있으면 결코 내려놓음의 결단을 할 수 없다. (내려놓음을 포기하는 것은 차라리 안심이 되지만, 그러한 상태는 여전히 두려움에 붙들려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단절을 극복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두려움에 붙들린 자에게는 두 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 눈을 감았을 때 굳이 움직이지 않으면 쓸데없는 위험에 노출될 위험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상태 자체가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급한 마음으로 인해 무엇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내려놓지 않는 자는 느낄 수 없지만, 이미 우리 안의 아버지의 영, 곧 성령님은 바로 그 내려놓음의 순간을 가장 소망하고 계시며, 한계가 있는 육신의 눈 대신에 우리의 영적인 눈이 되어주시기를 원하신 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 주가 주 되심을 바라보라. 주가 주 되심을 진정으로 인정하라.



진정 아버지께서 나의 주가 되셔서 나의 눈이 되어주시면, 그 때부터 행동을 시작하면 된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데, 성급한 마음이 앞서면 결코 내려놓음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낼 수 없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2) Self-Image가 부정적: 스스로에게 익숙했던 기존의 자신의 모습이 변화되는 것이 싫다.




자존감, 셀프 이미지 (Self-Image)라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나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과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규정하고 한계를 정하고 있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셀프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부정적이면 '변화' 또는 '도전적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대처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 힘들다. 변화를 회피하고 스스로에 대한 보호의식이 강하며 이러한 의식은 때때로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외부에 대한 공격적 성향으로도 드러난다. 그러한 보호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면 더더욱 자기통제권에 대한 집착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이와 같은 부정적 셀프 이미지로 인해서 야기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위험으로 인한 두려움이 발생한다. (두려움)

둘째, 기존의 자신의 익숙한 모습과 상황에 안주하고 만다. 변화로 인한 두려움을 택하기 보다는 현재의 모습 속에서 안주하는 선택이 위험이 적기 때문에 이에 만족할 수 있으므로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자기연민에의 구속, 자기 중심적 안주와 만족)




2.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상함 (상처): 하나님의 주권을 용납하고 싶지 않다.




1)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있다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신앙생활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과의 인격적 단절을 깊이 경험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한 가지 주된 이유는 그러한 오랫동안의 신앙생활 속에서 어느 새 축적된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실망감이다. 그러한 불만감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마음에 품고 있다.




- 왜 누구는 5달란트나 주시고, 나는 1 달란트만 주셨는가? (실망)

- 왜 내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원하는 것, 그것이 그렇게 큰 요구가 아닌데도, 들어주시지 않는가? (불만)




달란트에 대한 오해 또는 잘못된 편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을 특별히 선택하셔서 더 많은 혜택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특별한 선택과 혜택을 받지 못해서 차별을 받았다는 편견이 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이다.



또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고, 나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무리한, 큰 요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대하여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불만을 품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실망과 불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성령님께서 간구하시며 외치시는 내려놓음의 음성을 가로막는 벽이 되는 것이다.



달란트의 비유가 적용되는 범위에 대한 오해가 있다. 달란트 비유는 인생 전체를 바라보고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미 결정되었음을 의미하는 인생 결정론에 관한 비유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단계에서 단지 '적은 일'에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이다. 그리고 이 적은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것을 맡기시는 지를 결정한다.



마태복음 25: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1 달란트에 충성한 종이 그 이후에 5달란트를 받게 될지, 아니면 5 달란트를 받은 종이 교만에 빠져 열매를 맺는 데에 실패한 이유에 그 다음에 아무것도 받지 못할 지 누가 알겠는가? 인생의 한 부분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인생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가 달란트 비유에 대한 섭섭함과 실망을 낳게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갖게되는 것에는 그 마음가짐에 있어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고 허락하신 기회들과 선물들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삶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바로 지금 자신이 붙들고 있는 사소한 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 실망하고 마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사소한 한 가지를 이루어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는 더 높고 귀한 뜻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지혜의 한계와 무지로 인해 마음이 닫혀버리는 것이다. 단지 내가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인한 귀한 뜻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도가 낮고, 더 이상 감동이 없다 - 믿음과 신뢰 회복의 문제




신앙의 열정은 어느 새 식어버리고 뜨거운 감동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 이미 알지도 못하는 순간에 추락해버린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추수려서 건져올릴 수 있는 지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시간에 무작정 맡기자니 초조해지고, 해결방법을 고민하자니 이미 침전된 마음에는 열성적인 동기부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식어버린 신앙의 열정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기도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말씀 속에 잠기며 내 안의 성령의 음성에 마음을 귀울이는 것만이 그 신앙을 구출 할 수 있다.



이미 식어버린 신앙, 그것은 나만의 감정과 행위에 의지해온 신앙, 자기 만족과 안이함 속에서 추구해온 신앙이 기름이 고갈되어 심지가 말라가고 있는 등잔과 다름이 없다. 그러한 신앙을 위한 응급처지는 오직 성령의 은혜이다. 그리고 먼저 내려놓지 않는 신앙은 성령의 은혜가 차지할 자리를 온전하게 내어드리지 못하는 신앙이다.



문제는 이렇게 침전된 신앙이 성령의 은혜보다는 다른 무엇인가 새로운 계기나 경험 (선교, 기도원, 수련회 등등) 을 의지해서 '신속한 해결책'에 골몰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이 시점부터 사실, 자신의 신앙의 진정한 문제는 덮여지고 예전의 감동과 경험을 다시 체험하고 이에 의지하고 싶어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가까이 있다. 내려놓음의 실패로 인한 신앙의 문제는 '다시 내려놓아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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