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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츠코] 이야기에서 얻는 교훈

한 이년 전에 [부르츠코](복있는 사람 출간)라는 책에 소개의 글을 짧게 쓴 적이 있다. 중남미 지역의 모틸론 부족과 그 인근 부족 선교에 헌신한 부르스 올슨이라는 미국인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담은 자서전이다.
보통은 필자가 신간 도서에 대해서 소개의 글을 쓰는 것을 가능한 한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느낄 정도로 필자가 이 책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은 처음에 한국에 소개될 때에는 [밀림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그러나 후에 정식으로 판권을 인정받아 부르츠코라는 이름으로 재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몽골에 처음 들어가 살게 된 곳이 오병이어 선교회에서 마련해 준 게스트 하우스였다.  그 곳에 전임 선교사분들 중 한 분이 남겨놓은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밀림의 십자가였다.
사역 초기 그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위안과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강한 도전과 예리한 자극이 있었다.

그 책에서 받은 교훈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저자의 사역에서 보이는 현지 문화에 대한 포용성이다.
둘째는 사역자에게 있어서 고통이 가지는 의미이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저자를 인도해 가시는 독특한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현지 문화에 대한 포용성
이전 글에서 필자가 3회에 걸쳐서 연재한 토착화, 현지화, 상황화의 문제는 필자가 몽골에 들어와 초기에 사역하는 과정에서 고민하고 있던 주제였다.
그 무렵 하나의 구체적 실례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이 부르스 올슨의 자서전이었다.
올슨 선교사는 당시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외부인에 대해서 적대적이기로 유명했던 모틸론 부족에 들어가서 몇 년간 모틸론 인디오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면서 밀림에서의 삶을 관찰하고 현지의 문화를 이해하고 모틸론 언어를 배웠다.
그는 사역의 결실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밀림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던 시기를 지냈다.

그러던 중 그가 가지고 있던 현대 의약 지식이 모틸론 족에게 필요함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올슨 선교사의 탁월한 점은 그가 바로 약을 보급함으로 해서 무당과 대척 경쟁 관계를 만들지 않은 점이었다.
그는 현지 사회 구조를 존중했고 그 틀 가운데서 그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도움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무당들을 찾아가서 주술을 할 때 약도 같이 사용하도록 권했다.
즉 그들이 가지고 있던 주술적 세계관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인디오들에게 현대 의약의 유용성을 점차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무당들은 점차 약의 효능을 확인하면서 약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그로 인해 올슨과 무당들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그 후 모틸론 족에게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약의 사용을 통해서 모틸론족이 보존될 수 있었다.
그 결과 다른 제3세계에서 흔히 보였던 전통 수호 세력과 서구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기독교 선교사 간의 갈등 관계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부르스는 인디오들이 복음을 그들의 사유 구조와 전통의 틀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기회를 찾았다. 그저 아무에게나 복음을 가볍게 던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모틸론 인디오들의 전설 가운데 앞으로 올 구원자에 대한 신앙과 갈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모틸론 족의 신앙과 전설을 토대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해서 복음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한 친구를 깊이 사귀게 되었고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친구는 복음을 받아들인 후 바로 전도하지 않았다. 때를 기다렸다. 노래 시합이 벌어지는 축제 날이 되었다. 그 날 그 친구는 노래 대회에서 복음을 배경으로 노래했다. 그가 지목한 어느 마을의 추장이 그 노래에 화답했다.

그 노래 곡조는 무당들이 사용하는 주문의 곡조와 비슷하게 들렸다. 그래서 부르스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그 친구를 만류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도하던 중에 모틸론의 문화도 하나님의 소유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평안함을 경험했다.

그 노래는 열두 시간 지속되었다. 그 노래를 통해서 수많은 모틸론 인들이 복음을 수용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하여 점차적으로 모틸론 인디오들은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회를 개혁할 수 있게 되었다.
모틸론인들은 새로운 자각을 가지면서 학교를 세우고 또 외부 세계로부터 농사법과 축산법을 수용하게 된다.
이들은 사회 혁명을 경험하지 않고서도 자발적으로 외부 세계와 교통하면서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고 시대의 필요에 맞게 변화해 갔다. 자신들의 대표를 컬럼비아의 국회에 보내고 자신들의 영토를 보존할 수 있도록 컬럼비아의 법을 바꾸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부르스 올슨의 사역 모델은 타문화권 선교사들이 깊이 묵상 가운데 성찰해 볼 가치가 있다.


사역자에게 있어서의 고통의 의미
부르스 올슨 선교사는 사역 초기부터 수많은 고통을 경험했다. 특별히 수 차례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질병으로 오랜 기간을 쓰러져 있어야 했다.
또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약혼자를 교통사고로 잃어야 했다.
그는 밀림에 들어가 있어서 그녀의 죽음조차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또 곧이어 그의 가장 사랑하는 모틸론족 친구를 잃게 되었다. 또 암살의 위협을 넘어야 했으며 공산 반군 게릴라에게 납치되어서 오랜 기간 감금 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반군에 협조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총살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용하시는 사람을 이렇게 어려운 환경 가운데로 인도하실까?
이 책에서 몇 가지 해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고통의 과정을 통해서 선교사가 하나님 앞에 더 연약해짐과 동시에 순전해짐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올슨은 하나님의 방해꾼으로 서지 않게 되었고 겸손히 주님의 뜻이 그 사역자의 삶과 행위에 반영되었다.

둘째로 많은 질병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예정의 손길이 있었다.  그 질병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틸론 족은 죽어가는 사람은 살인하지 않고 버려둔다. 초기 모틸론 부락에서의 정착 과정에서 올슨은 사경을 넘나드는 병고로 인해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극적인 순간에 헬기의 구조 등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질병의 치유도 자연 치유에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도움, 도시로의 송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본다.
또 올슨이 게릴라들에게 잡혀있는 동안 그는 게릴라들에게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 주었고 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결국 그 일을 통해서 많은 게릴라들이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 아픔이 사명으로 연결 되었음을 본다.    

사역자로의 부르시는 과정의 특수성
부르스 올슨은 어떤 선교 단체에도 가입되지 않고 파송 없이 그저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부담에 순종하여 선교지로 갔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 선교사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그는 선교 후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허드슨 테일러의 경우는 그저 하나님의 공급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역함으로써 믿음 선교(faith mission)의 좋은 본보기를 보였다. 그는 심지어 미국에서 집회할 당시 은혜받은 회중들과 집회 주관측이 즉석 헌금을 제안했지만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른 곳으로 가야할지도 모를 재정이 순간적인 은혜받음 때문에 자신의 사역쪽으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후 OMF 선교의 원칙이 된다.  그래서 그 단체의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 프로젝트에 있어서의 재정적 필요를 외부로 알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저 기도하면서 주님의 공급하심을 바라는 것이다.

필자도 선교지로 부르심을 받을 때, 재정을 스스로 모으지 말아야 한다는 영적 부담이 있었다. 때로는 잠시이긴 했지만 재정적으로 안정된 공급을 받는 분들에 대해서 부러움도 있었다.
그래서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필요들을 채워가시는지를 섬세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전에 존 생거 목사님 집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고 그 분으로부터 예언을 받은 적이있었다. 그 때 그 분은 내게 있는 “허드슨 테일러의 기름부음”에 대해 언급하셨다.
나는 잠시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혹 선교의 기름부으심일수도 있겠으나 좀더 구체적으로는 허드슨 테일러가 지향했던 재정적 의존과 믿음 선교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국 선교사들의 경우 선교지에 믿음으로 가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문인 선교사의 경우 목회자 선교사보다는 교회에 재정을 의지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를 본다. 그러다 보니 믿음을 가지고 그냥 선교지로 오는 경우들이 있으며 몽골 국제 대학교에도 젊은 사역자들 가운데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다.
이에 대해 선교의 경험이 많은 분들은 외국 선교 단체의 경험을 배워서 선교비 모금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확인하면서 선교지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별히 자비량보다는 선교 후원을 받을 경우 보다 위탁받은 자로써 책임있는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재정 모금 절차 없이 떠나는 것이 무모하고 준비가 부족한 행위로도 보인다.

물론 미리 주님 앞에서 재정적으로 준비하면서 미리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지혜임에는 분명하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전히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에 의존해서 생활하도록 훈련하시기 원하시는 경우도 있다.
반면 미리 재정적으로 준비하고 모금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 또한 주님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행위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원칙이 맞고 또 어느 지향은 틀린 것은 아니다.
하나의 원칙보다는 그 단체와 개인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끄시기를 원하시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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