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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초에 가족과 함께 다시 인도네시아로 입국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다 집이 좋다는 표현을 한다. 우리에게는 인도네시아에 우리가 머물고 살아가야 할 집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도착한 날 집에 잠복해 있던 모기떼의 습격을 받아 피부 이곳저곳이 울긋불긋해 졌다. 아이들이 한 달 반 정도 학교를 빠지고 긴 추가 방학을 가졌다가 새로 학교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으로 인해 징징거리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평안함이 있었다.


구월의 첫 토요일에 생일 맞은 사역자를 어떻게 축하해 줄까 생각하다가 그 날 오전 중에 갑자기 번개팅을 제안하게 되었다. 영화를 같이 보고 저녁을 살테니 원하는 사역자들은 모이라고 카톡을 날렸는데 거의 대부분 가정이 반응을 해줘서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같이 지난 한 두 달 간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수다 떨고 위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보게 된 영화가 명량이었다. 인도네시아에 CJ사가 지분 참여한 자카르타 시내 중심의 한 영화관에서 고정적으로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데 마침 명량이 상영되고 있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었지만 보러 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한 티비 방송에서는 명량에서 나오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내려놓음의 리더십이라고 소개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마침 내려놓음의 리더십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궁금함과 함께 필자의 마음에 남았다. 마침 자카르타에서라도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공감과 울컥하는 격정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함을 경험했다. 영화 속의 이순신 장군이 맞은 급박한 상황이 선교지에서의 내 처지와 맞물려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 해전을 맞기 전 그는 임진왜란 직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까지 당파 싸움틈 사이에 모함을 받아 한양으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건강을 상한다. 그를 대신해서 삼도수군 절도사가 된 원균은 일본 해군과의 전투에서 패해서 만여명의 수군을 잃고 또 대부분의 선박과 거북선이 수장되고 말았다.


영화에서 묘사된 당시의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두려움의 영이었다. 임금 선조는 이순신에게 바다를 포기하고 남은 수군과 함께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했다. 실은 대부분의 휘하 장병들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열두척 남은 배를 가지고 가공할만한 일본 함대를 직면하기 보다는 육지로 숨어들어가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었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순신은 바다를 포기하면 조선의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비록 임금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고 휘하 장병들은 두려움에 이미 전의를 상실했지만 이순신은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야만 미래가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바로 필자가 느끼는 현재 사역의 현실이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은 있지만 그 길 위로 거대한 산들이 버티고 있는 듯한 형국이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막아놓은 높은 행정적인 장벽, 무슬림의 견고한 진과 그로 인한 영적인 압박, 사회 문화적인 고립감 가운데 내부의 역량만으로는 무언가 돌파가 일어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 가운데 있다고 느껴졌다. 앞으로 계속될 재정적, 인력 상의 부담도 내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압박감의 일부였다. 사역 팀의 대표로서 행정 문제 상으로 생긴 복병의 일격으로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가서 표류했던 상황 등을 생각해 보면서 이순신 장군이 경험했던 리더로서의 고뇌가 내 상황에 오버랩되었다. 분명한 것은 나 또한 리더로서 가야 할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영화가 조명하는 이순신의 적은 내부에 있었다. 그것은 수군과 백성 안에 퍼져있는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혼자라도 살아야겠다는 본능적 욕구였다. 그로 인해 최후의 전술적 보루였던 하나 남은 거북선마저 불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순신의 전의를 꺾고자 했던 내부자의 소행이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많은 경우 필자가 사역의 영역에서 날고 싶을 때 날개를 달아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내 두 다리에 모레 주머니를 채어주셔서 나를 묶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년전 인도네시아에 들어오기 전 사역을 잘 준비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넷째 아이를 주시는 과정에서 내 손을 묶으셨다. 들어와서 언어를 배우며 사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내부적으로 여러 반대를 만나게 하시며 그냥 멈춰서서 기다리게 하셨다. 그 과정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나는 병상에서 두 달을 묶여 있어야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양한 태클 사이로 걸어가게 하셨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를 의지하려 할 때 그것을 꺾으셨다. 마치 기드온이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미디안과 전쟁하려 할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참여할 군사의 수를 줄이시고 그들의 손을 항아리와 횃불로 묶어두신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어달리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이 사역에서 드러나셔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표가 사역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되도록 우리의 초점을 계속해서 바꾸시기를 원하셨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승리로 바꾸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했다. 거북선이 불탄 것이 전투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전투를 치러야 할 유일한 이유는 백성들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일이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의 휘하 병사와 백성들 앞에서 죽음의 문턱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열두척의 배로 일본 군을 대했을 때 장군선을 제외한 배들은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 때 이순신 장군은 다른 배에 돌아오라고 명령을 하거나 그 배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저 장군선 단 한 척이 적 수군의 선봉과 맞부닥쳤다. 그리고 백병전이 이어졌다.


내가 당한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은 리더의 몸으로 모든 공격을 다 받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르는 자들이 용기를 내어 반격하게 되기까지는 온 몸으로 당해내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실은 수술 이후의 건강의 부담으로 인해서 내 개인이 어느 새 전면전이나 백병전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느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필자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움츠러지고 일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현 사역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교육회사를 시작해야 하는 가운데 이것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주저주저하는 내 마음이 있었다. 걸리는 것이 여러 가지 있었다. 어려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편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죽느냐 죽지 않느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여기가 내가 죽어야 할 장소인가였다. 그것이 확실하다면 움직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서 전진하라고 말씀을 주셨다. 실은 이제껏 사역 가운데 세 번 연속으로 확신 가운데 전진하라고 하셨던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였다

보통은 기다리라. 너는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등의 메시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전투 가운데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고 내 온 몸이 그에 대해 반응하겠다고 고백했던 시간이 그 영화를 보면서 되새겨졌다.


명량에서의 전투 장면은 내가 기도하고 매달리던 시간을 연상시켰다. 전투 중 가장 큰 고비중 하나는 바다에서 급류와 회오리로 인해 장군선과 적선들이 서로 엉키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적선들이 침몰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순신의 장군선도 함께 침몰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때 전투를 바라보던 백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배를 노 저어 와서 장군선을 급류에서 끌어내는데 힘을 보탰다. 이순신은 후에 이것을 천은이라고 했다. 결국 자기를 버리고 감당해야 할 일을 향해 뛰어들었을 때 그는 백성들 가운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용기와 희망은 구체적인 도움의 손길이 되어서 이순신 곁에 함께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전세는 이 용기와 새로운 각오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가 선교지에서 가지는 전투는 부수는 싸움이 아니라 세우는 싸움이다. 건설하기 위한 그리고 확장하기 위한 싸움이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영적인 것이고 또 우리가 가진 내면의 약점이기도 하다

우리 사역에 있어서 우리의 좌초해 가는 배를 끌어주는 배는 바로 현지에 있는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리고 육지에서 환호하는 백성들은 우리의 중보자들일 것이다.

전투가 수행되기 위해서는 배 안에서 각자의 병사와 선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 배 밑창에서는 손에 피를 흘리며 노젓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칼과 망치를 들고 백병전을 치러야 했고 누군가는 그 와중에 대포를 쏘아야 했다. 리더의 조율을 통해 이 모두의 노력이 최선을 향해 모아짐을 통해서 감동의 역사가 펼쳐졌다.

하나님 안에서 소명을 가지고 죽어지는 몇 명의 모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소망을 우리 가운데 부어주시기를 기다리신다


명량에서 이순신의 죽어지는 모범을 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전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듯이 이 땅에서도 죽어지는 선교사 그룹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내가 인도네시아로 소명을 받았을 때 나는 사무엘 상에 나오는 요나단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난 적이 있다

블레셋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움직이지 않고 두려워할 때 요나단과 그의 무기 든 자 두 사람이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하나님께서 그 적진에 큰 동요를 주셨고 그로 인해 용기백배한 이스라엘 군대가 움직여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 이야기가 명량을 본 후 내 마음에 다시 한 번 감동으로 새겨졌다. 우리가 죽어질수록 그 분의 영광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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