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찾은 내 비전, 내 꿈, 그리고 내 유산
저는 방학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 여러 선교 현장을 다니며 아버지와 중국 사람들의 놀라운 신앙과 그 땅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 인생의 비전과 꿈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모습,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또는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씀을 전하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삶이 이렇게나 귀하구나!’ 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 – L족 이야기
중국 Y성에는 복음화된 소수민족인 L족이 살고 있습니다. OMF의 전설적인 선교사이신 ‘프레이져’ 선교사님이 뿌린 씨앗을 통해 수많은 L족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족을 비롯해서 더 강한 다른 소수민족들에 의해 깊고 높은 산으로 떠밀려서 깊은 산속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가려면 몇 일씩 차를 타고 가야 했고, 차가 못 다니는 길에 들어서면 험난한 산행을 해야 합니다. 산행은 보통 하루 종일, 먼 길은 몇 일씩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 또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몇 시간을 산을 타고 예배당이 있는 장소로 올라와야 했고, 어떤 분들은 며칠씩 걸어서 몇 개의 산을 넘어와야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흩어진 마을들을 섬길 사역자들이 부족한 터라 그들의 예배는 주로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순회설교자들이 계속 여행을 하면서 이 마을 저 마을들을 방문하는데요, 그들은 순회설교자가 와야만 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몇 시간을 혹은 며칠을 예배를 드리기 위해 고생해서 산을 타고 넘고 왔는데 말씀을 들을 기회조차 희박하니 이분들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얼마나 컷겠습니까? 그래서 아버지와 다른 사역자들이 가서 말씀을 전하면 그렇게 감격스럽게 말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아버지가 말씀을 전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요, 눈을 반짝이며 말씀을 사모하면서 듣는 L족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와…나도 언젠가 저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가정 교회 할머니의 눈물
한 번은 중국 가정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11살, 12살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할머니가 교회 문 앞에 앉아 계셨고 다들 그냥 지나치려는데 아버지께서 멈춰 서시더니 옆에 있던 가정교회 지도자에게 저 할머니가 누구시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지도자는 저 할머니가 평생토록 교회를 지켜온 분이시며, 이제 몇 달 못 사시는 시한부 인생이시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말도 하지 못 하셨고, 그저 교회 문 앞에 앉아서 교회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할머니 옆에 앉으셔서 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더니 기도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할머니의 인생을 축복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이제 할머니께서 곧 보시게 될 천국에 대한 아름다운 소망에 대해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눈을 뜨고 할머니를 보았는데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생의 끝을 앞두고 있는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아버지와 그 기도에 감격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를 보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버지, 이 일을 왜 하시나요?
아버지께서는 중국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대체의학을 공부하셨고 그것을 통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 하는 가난한 소수민족들을 위해 의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도 같이 조금 공부를 했지만 환자를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서 아버지께서 다른 의료 사역자들과 함께 환자들을 보시게 되면 저는 주로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 번은 굉장히 고단한 산행 끝에 문둥병자들이 모여 사는 한 고립된 지역에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이미 소문을 듣고 몰려와 있어서 숨돌릴 시간조차도 없이 바로 의료 활동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 곳엔 정말 보기에도 끔찍한 환자들이 많았는데요, 특히 제 기억 속에 많이 남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환자는 7, 8살도 되어 보이지 않은 남자 아이였는데요, 얼굴 반 쪽이 종양으로 덮어져 있었습니다. 건물 밖에서 부끄러워 들어오지도 못 하고 몰래 숨어서 구경만하고 있었는데, 저는 거부감이 들어 내심 그 아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선 그 아이를 딱 보시더니 손짓해서 들어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앉혀놓고 다정하게 말씀을 하시며 이리저리 얼굴을 만지며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아이도 갑작스런 친절에 조금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관심을 준다는 것이 그 아이에게는 어색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아이를 치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종양에다 직접 침을 꽂으시니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 내리는데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다정한 모습으로 아이를 계속 안심시키며 치료를 진행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고단한 하루를 보내시고 쉬지도 못 하고 일 하시는데도 아이를 치료하는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실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잠시나마 그 아이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여겨져서 아버지께서 치료를 마치신 후에 침을 뽑는 일은 제가 했습니다. 그 아이의 코에서 누런 콧물이 나오길래 그것도 휴지로 닦아주고요.
한 때 아버지께서는 L족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신학 강의를 하시다 중국 공안이 들이닥쳐서 산으로 피신해 숨어 지내시면서 마을 사람들이 조달해주는 식량에 의존해 사시다가 집으로 돌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정말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수척해신 모습으로 돌아오셨죠.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한 저는
“아버지, 이제는 뒷 선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내는 일을 하시는 것도 좋지 않나요? 왜 이 일을 계속 하시나요?” 라고 여쭸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그렇게 살 수도 있겠지. 좀 더 편하게 살려고 하면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이 사역이 내게 매일 감동을 주기 때문이란다. 나는 매일 매일 내 마음에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단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돈이나, 성공이나, 명예나, 편안한 삶이 아닌 감동을 쫓아가는 삶을 살고 계시는 아버지. 비록 일이 고단하고 힘들고 때론 중국 경찰에게 쫓기기까지 하시지만, 연세가 50이 넘어서도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일을 기꺼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도대체 저렇게 살 수 있는 비밀은 도대체 무엇일까? 저는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내가 나이가 50이 되고 내 자녀가 내게 “아버지, 왜 이 일을 하시나요?” 라고 묻는다면, 나도 내 아버지처럼 “이 일이 내게 감동이 되기 때문이란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나의 자녀들이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동을 나를 바라보며 동일하게 느낄 수 없다면, 내가 아무리 큰 돈을 벌고 큰 명예를 얻는다 할지라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 어떤 귀감도 되어줄 수 없겠구나.”
저는 아버지가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그 남자아이를 치료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제 기억 속에 있는 그 그림이 제가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늘 기억해야 할 저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나이가 50이 되었을 때, 저의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이런 인생을 선택한 이유는 이 인생이 무엇보다 더 나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란다”
한 소수민족 자매를 통해 알게 된 복음의 능력
언젠가 아버지께서 어느 소수민족 마을을 방문하셨는데, 그 마을 사람들 전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이 어찌나 가난하던지 그곳 사람들은 못 먹고 못 입고 병 나면 약도 제대로 못 써보고 그저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환경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한 10대 자매가 얼굴 전체가 붉은 피부 트러블로 일어나서 꽃다운 나이에 참 안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자매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만약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더라면 저희 모두 아마도 자살하고 말았을 거에요.”
참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가슴 아픈 고백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사는 사람들이구나.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그 자체이자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갈 유일한 이유구나. 진짜 예수 없으면 못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구나.”
저는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라면,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면, 나는 바로 이 복음에 목숨을 걸어야겠다. 그리고 이 복음의 생명의 능력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힘든 땅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살아야겠다. 산 꼭대기든 바다 끝이든 이 복음을 들고 가야겠다!”
이 복음이, 그리고 이 복음에 대한 열망이 저를 지금 이 곳 인도네시아까지 오게 한 것 같습니다. 복음이 아니었다면 제가 제 조국인 한국을 떠나고, 제가 자란 중국을 떠나고, 기회를 약속하는 미국을 떠나서 이 곳까지 올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교육 선교사의 비전
교육선교사로서의 꿈 역시 아버지를 뒤를 쫓으며 본 사역지에서 발견했습니다. 저는 중국 오지 현장에서 조그만 아이들이 학교도 다니지 않고 힘든 고역을 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한 번은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팔을 걷고 소 여물 같은 것을 나르고 있는 6~7살 정도의 한 여자 아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차를 가만히 응시하는 그 여자 아이의 눈은 아이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응당 가지는 낯선 외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전혀 없는, 그저 힘든 삶에 찌든 어른의 눈이었습니다. 한창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껴야 할 아이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국가정교회 사역자 자녀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후원 없이 자비량 사역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역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눈코 뜰새 없이 바쁘고 고단한 삶 중에 자녀들은 그대로 방치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버지의 사역팀이 사역자의 집을 방문하셨는데 엄마도 아빠도 없고 다섯 살 아이가 홀로 컴컴한 방 구석에 외롭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한국 돈 5천원, 만원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니고 힘들게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절망스런 현실을 보면서 저는 저의 마음이 깨질 듯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당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90%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총 학비의 10%를 냈었는데 그렇게 내는 돈으로도 산지에 있는 아이들 50명은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아버지, 너무 가슴이 아파요. 저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는데… 제가 내는 학비로 수 십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갈 수 있는데… 제가 이 아이들을 보고 어떻게 마음 편히 학교를 다닐 수 있겠어요?”
아버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지금 너에게 들어가는 학비를 이 아이들을 위해 쓰면 5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생각해보렴, 네가 지금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도와준다면 50명의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겠지만, 네가 교육을 잘 받아 열심히 노력해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면 너는 50명이 아니라 수천, 수만 명의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단다. 다만 오늘 본 것을 잊지 말고 이 아이들에게 빚을 졌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렴!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더 크게 갚아주려무나!”
그 때부터 저는 이 아이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교육가로서의 꿈을 키우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이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항상 “가난한 아이들과 나와 같은 교민 및 사역자 자녀들을 위한 교육을 하고 싶다”라는 꿈을 키워왔는데, 이 곳에서 둘 다 바라보고 갈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신납니다. 이 곳에서 저는 제가 항상 마음으로 가져왔던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 꽃 피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말이죠.
"감동을 주는 삶" 도전의 마음을 주시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