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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네스토리안으로 통칭되는 동방 교회의 선교사들은 지리상 발견 이전 시기인 중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들이었다.  
중세 유럽의 교회가 제도화하고 화석화되어 갈 무렵 동방에서 그들은 그 때까지의 선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결실을 맺은 그룹이었다. 그들의 주요한 활동 무대가 되었던 나라들은 당시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하고 문화적으로 선진적인 문명권에 속하고 있었다.  

근대 유럽이 바닷길을 열고 통상에 주력하면서 식민지를 개척해서 군사적 경제적 우위를 장악하기 이전 경제, 문화의 중심은 아시아 지역에 있었다.  
특히 페르시아권, 인도권, 중국권은 문화적으로나 무역에 있어서 유럽에 비해 훨씬 앞서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강대한 대제국이었다. 페르시아 제국, 당 제국, 투르크 제국, 몽골 제국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이 지역에서 성장한 제국들은 각각 그 제국의 이념적 기초가 된 고등 종교들이 발달되어 있었다.
따라서 로마나 유럽에서의 기독교 확산과 비교해 볼 때 동방 교회의 선교 상황은 훨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 다시 말해 서구에서와는 달리 동방 교회는 동방에서 다른 고등 종교들의 지속적인 반대와 저항에 부딪혀 왔었다.  
훨씬 더 어려운 선교 상황 가운데 타자의 종교로써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특별히 이슬람의 등장은 동방 교회에 크나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무와이야 제국이나 압바스 제국과 같은 초기 이슬람 제국은 자신의 세력권 하에 있던 동방 교회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폈다.
성서를 가진 민족이라고 해서 다른 종교를 가진 민족에 비해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교도들에게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 개종을 권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이라는 정치, 사회, 경제의 중심 세력 아래서 다른 종교를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압력이 되었다. 이러한 이슬람의 우산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동방 교회는 동쪽으로 계속해서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제약에 대한 돌파구로 선교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슬람이 지속적으로 동진하는 가운데 동방 교회의 선교사들은 이슬람보다 앞서서 동쪽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슬람의 압박은 십자군 전쟁을 지나면서 12세기 이후 강화하는 이슬람의 원리주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강화되어 가면서부터이다. 이슬람권 내의 타종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어 가면서 티무르 제국 시기에는 바그다드에 위치한 총주교구가 철수하여 현재의 이라크 모술 북부의 산악 지대인 쿠르드족 거주 지역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지속적인 대규모 기독교 탄압으로 수많은 주교들이 핍박과 탄압으로 죽임을 당하고 기독교 공동체가 파괴되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음을 동방 교회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방 교회는 질긴 생명력으로 현재까지 이슬람의 박해 가운데 살아남았고,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며 교회를 유지시켰다. 이슬람권의 천년이 넘는 박해 속에서 생존한 교회이다. 중세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교구를 가지고 가장 많은 선교지를 개척했던 저력있는 교회였다.  물론 교회가 한 때 세속화되기도 했고 내부의 다양한 문제와 갈등 존재했다. 로마의 교회, 중세 유럽의 교회가 제도화, 의례화하고 또 성직 계급이 타락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동방 교회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특별히 동방 교회의 성직자들은 중세 아시아권에서 학문의 전수자로써 학문과 정치, 경제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특히 동방 교회의 선교사 중에는 지식인 선교, 상류 엘리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 종교의 숲 속에서 지배자 계층의 신임을 얻는 것이 교세 확장의 지름길이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성과 속을 구분하지 않았고 세속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은둔 생활과 명상 보다는 현실 속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으며 정치와 학문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미쳤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이나 느헤미야와 같은 삶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동방 교회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이전 시기의 교회 사가들은 토착화로 인한 문제로 동방 교회가 쇠퇴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론 세속 사회에 접근해서 그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결국 세속화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한 예로 몽골 제국 시기에 동방 교회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왕실의 종교로 우대받았다. 그러나 결국 몽골 시기의 정치적 과보호와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력 확대가 오히려 후대의 자생력을 잃게 한 것 같다. 몽골 제국의 군주들의 보호가 사라지고 사회적으로 적대적인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동방 교회가 중국과 그 주변 지역에서 사라지고만 것이다.
정치적 의존이 결국 후대에 전개된 정치적, 사회적 탄압을 이기지 못하게 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동방 교회의 역사와 그 선교 경험은 여전히 현대 교회의 현 모습과 선교에 대해서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해서 더 깊은 연구와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천 수백여년간에 걸쳐 그들이 경험했던 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무지해 왔고 그래서 놓치고 있던 것들이 많이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좀더 관심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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