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주 여행을 통해서 가족 구성원이 쉼을 얻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일년 반 가까운 몽골에서의 사역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호주 코스타 십주년 기념 잔치를 빙자해서 아내와 나의 결혼 십주년을 조용히 기념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여름의 호주는 평화롭고 아름다왔다. 현재 영하 20-30도를 오고가는 춥고 메마른 땅 몽골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몽골의 내가 사는 곳은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하다. 분지에 수도가 위치한 탓에 밤에는 갈탄과 나무 타는 연기로 거리가 자욱해져서 눈물이 나와 걸어다니거나 창문을 열어놓기 힘들다. 추위 때문에 아이들은 장시간을 집안에 갖혀지내야 한다. 호주의 여름 밤 공기는 한겨울의 몽골의 밤공기와는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며 청아하고 훈훈하게 나를 감싸 안았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남몰래 몽골에 두고온 사랑하는 교회 식구들을 그리워했다. 떠나기 전 툭수가 “선생님 언제 오세요? 선생님 안 계시면 저희 마음이 힘들어요”라고 말했던 것이 귓가를 맴돈다. 내가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도 같이 있으면 마음이 위로받고 편하다는 것이다. 열흘 남짓 호주에 있으면서 우리는 한 달 정도의 긴 시간을 머문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너무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보았건만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다시 기쁘고 도전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을 거쳐 몽골을 향해 호주를 떠나기 전날, 시드니에서 두시간 드라이브 거리에 있는 뉴 캐슬이라는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몽골의 우리 교회 식구들은 평생에 이런 좋은 환경 한 번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가슴아프게 다가와요.”
나는 대꾸했다.
“여보, 몽골 식구들은 힘든 환경에 있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는 누려보지 못하는 축복을 얻쟎아요? 오히려 호주에서는 이 아름답고 편안한 환경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데 더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봐요.”
몽골 공항에 도착해서 동연에게 물었다. “너 몽골 돌아와서 기쁘니?” 동연이가 대답했다. “한국이 더 좋아요.” 이제는 아이가 커버려서 환경을 분간하는 것일까 싶어서 다시 물었다.
“동연아, 왜 한국이 좋은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까요.”
동연이는 비교적 환경에 잘 적응하고 감사하는 아이다. 호주 코스타에서 한 자매님이 동연이와 대화하고 나서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셨다.
“동연(처음엔 동현인 줄 알았네요)인 참 이쁜 말을 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아빠,엄마 모두 안계시고 서연이는 잠들어있어 혼자 기다리느라 지쳐있었나봐요..
말도 안하고 화가나있었는데 과자도 싫다던 동연에게 갖고있던 껌몇개로 말을 하게됐지요..ㅎㅎ
물었지요.. 더우니까 힘들지 않니? 아니요..
더운게 좋아 추운게 좋아? 더운게요..
동연이 사는데는 많이 추우니? 아. 몽골이요? 많이 추워요..
더운게 없어서 싫어요..... 아니에요.. 추운것도 좋아요..
잠깐동안 불만족스러워했지만 금방 마음을 돌이키더라구요.. 하나님 앞에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동연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한국을 잠시나마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서 엄마 아빠 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도 커가는 손자 손녀를 자주 보시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으시다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아렸다.
아내는 공항에서 집을 향해 돌아오는 차안에서 창밖에 펼쳐진 초원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여보, 하나님이 가라하신 땅에 있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요. 몽골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더 깊고 넓게 몽골을 사랑하고 싶어요.”
그렇다. 하나님이 보내신 땅에 있는 것이 더 없는 기쁨이요 축복이다. 우리가 어느 곳에 보내심을 받든지 간에 그곳이 우리에게 더없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서연이가 며칠 전부터 밤에 울고 떼를 많이 썼다. 해변가에서 파도와 놀고 놀이터와 동물원에서 그토록 신나게 놀던 녀석이 밤에 많이 울었다. 더 놀고 싶어서 자기 싫다고 떼쓰는 것일지도 몰랐다. 방에만 갖혀 있던 아이가 물을 만났으니… 한편으로는 여행 중 자주 환경이 바뀌니까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서연이가 집에 돌아와서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낡고 허름한 아파트일지언정 그녀에게는 익숙한 자기만의 공간이기에. 마침 몽골 자매 바스카가 일을 도우러 왔다. 서연이는 “바카, 바카”를 외치며 그녀에게 안긴다. 동연이와 서연이는 바스카와 신나게 놀다 잠들었다.
아내와 나는 도착 예배를 드리면서 확인한다. 몽골은 우리의 집이 있는 곳이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 있는 기쁨과 집에 돌아온 평안의 감격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했다. 예배 중 말씀의 본문이 마침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빌립의 이디오피아 내시 전도 장면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 교회가 밖으로 흩어져 전도하려 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핍박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교회를 흩어놓으셨다. 그리고 흩어진 교인들을 통해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게 한다. 물론 예루살렘에도 믿지 않는 전도할 사람들이 많았건만 하나님의 관심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언이 전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확산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빌립은 사마리아로 피해간다. 그곳에 도망가서도 성령에 이끌림을 받으며 전도하기 시작했고 그 땅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빌립을 광야로 이끌어 가신다. 지금 사마리아 땅에는 부흥이 일고 있고 많은 사람이 감격과 흥분 가운데 있으며 자신이 할 일이 그곳에 넘쳐나건만 빌립은 성령의 이끌림 가운데 사막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 하나를 만나기 위해… 빌립이 성령의 인도에 순종함으로 해서 그를 통해 이디오피아 땅에도 복음의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빌립의 순종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성령이 이끄시는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새로와졌다. 그렇다. 우리는 그 이유 때문에 몽골 땅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역 장소에서 하나님이 또 다른 사역지로 우리를 옮기실 그 때까지 이렇게 주님을 예배할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 서서 예배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