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 말씀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구했던 바울에게 성령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그 은혜가 무슨 은혜인지에 대해서 묻고 구하는 시간이 있었다. 실은 이러한 은혜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이다.
인도네시아에 부르심을 확신하고 들어왔지만 현실의 수많은 장벽을 보면서 한숨이 나오는 시간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 경험한 것이 기근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기근을 보면서 이 땅에 머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풍요의 땅인 애굽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아내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경험한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후 또 똑같은 기근을 경험한다.
이 기근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우리는 남의 문제 과거의 문제가 가지는 영적 의미는 훨씬 쉽게 파악한다. 하지만 나의 문제 그리고 현재 닥친 문제를 영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훨씬 깊은 영적 수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약함 가운데 있을 때 은혜라는 단어가 가지는 깊이를 자각하게 된다.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당황해 하며 많은 질문 가운데 빠진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것일까?
왜 이런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일까?
과연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인가?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과정을 거치며 결국 이 고통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만나게 되면 그 고통 가운데에서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통이 하나님의 무관심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또 우리가 모자란 부분이 많아서 우리를 벌주시거나 힘들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 이 고통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주어지는 하나의 패키지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인도네시아에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께 재차 묻는 시간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인도네시아 땅을 밟은 후에도 무언가 화려한 사역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제도적인 틀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해와 장벽에 맞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때로는 사명조차 버겁고 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때가 바로 내 야망이 죽고 하나님의 소명이 다시 정립되는 시기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죽고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방식대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도록 우리가 도구의 자리로 내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실은 이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기적이기도 하다.
이 어려움의 순간에 우리의 약하고 누추한 내면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힘든 삶 자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우리의 누추한 내면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의 교육 사역 프로젝트가 많은 분들의 기도와 후원 가운데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데 혹여 다양한 방해 가운데 이것의 싹이 잘려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차오르자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했다. 그것이 잘 조절되지 않았을 때, 가족과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두어 차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급기야 아들이 볼멘소리로 나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남들은 내게 좋은 아빠 둬서 좋겠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정작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비자 일로 한국에 머무는 동안 믿음의 연륜이 짧은 아버지가 노파심으로 인해 반복해서 하시는 자식에 대한 걱정과 질문에 대해 짜증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반응은 비슷한 대응을 가져오게 마련이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난 네가 내려놓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네가 뭘 내려놓은 건지 모르겠다.”
연거푸 가족들이 표현한 거슬려 하는 반응에 나는 아차 싶으면서 이것이 내 안에 남아있는 어떤 문제가 있구나 싶었다. 이 때 내가 경험한 최선의 방법은 내 초라하고 누더기 같은 내면의 모습을 솔직하게 주님 앞에 드러내고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분의 사랑의 마음을 겸손히 구하게 된다.
그렇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위로와 새로운 약속 그것이 은혜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애통하는 자가 왜 복이 있고 위로를 받는 것인지를 경험하게 된다.
한 때 내려놓음 책을 쓰고 유명세를 타던 시기에 내적으로 혼돈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내가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문제를 다시 들고 있고 내 안에는 아직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음을 느끼지만 남들은 책으로 인한 착시 현상 때문에 나를 높은 단계의 신앙인의 표본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이 어려웠다.
한 번은 인천 공항에 가족이 함께 도착했을 때 아내와 의견 충돌로 불편한 마음으로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나는 갑자기 모드를 바꿔서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고 그 분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때 나는 내 자신이 껍데기에 싸여 있다고 느꼈다. 그 후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이런 생각이 내 마음에 차올랐다.
“네가 다 내려놓은 자이기에 그 책을 쓴 것이 아니란다. 너는 그저 그 내려놓기 위해 씨름하면서 그 방향으로 가는 가운데 그 과정을 책으로 담은 것이지 않니? 하나님은 완전히 완성된 자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란다.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고 부족한 모습을 부둥켜안고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이 너를 사용하는 것이란다.”
우리에게 허락된 가시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직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강해지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약함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러나고 드려져야 한다. 나는 일련의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나의 약함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낙담 가운데 남아있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 약함을 통로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맛볼 수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얻지 못하고 또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오히려 그 고통은 나를 낮추고 비워주며 또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더 새롭게 하는 도구가 된다.
그 새로움 가운데 나는 다시 오늘 달려갈 담대함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