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활주일은 한국에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온지 130년 된 날이었습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두 선교사가 1885년 부활주일에 제물포에 첫 발을 디뎠지요.
그 날을 기념하며 꽃다운 나이에 조선 땅에서 숨을 거둔 루비 켄드릭 선교사의 마지막 편지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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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조선 땅에 오기 전 집 뜰에 심었던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집 생각만 했습니다.
욕심쟁이 수지가 그 씨앗을 받아 동네 사람에게 나누어 주다니, 너무나 대견스럽군요.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 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오는 어린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서너 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 하겠죠?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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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고향 땅이 그립다고 한 그녀의 글귀가 마음에 짠하네요. 이 글귀를 보면서 문득 최근 이사온 우리 집 뜰에 과일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앞으로 세상 어느 곳을 가든지 이 땅의 향기와 맛을 생각하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양화진에 있는 그녀의 묘비명입니다.
만약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진다면 그 전부를 한국에 바치리.
If I had thousand of life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