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머물면서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곳 인도네시아로 부르셨는지를 깨닫게 된다.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 모든 것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일단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 명령에 우리가 순종하고 기다리면 왜 그 명령이 주어졌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순서상 우리가 다 이해하고 납득이 된 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명령처럼 영적 세계에서는 순종하기 전까지는 명령의 이유가 설명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이 땅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인도네시아 땅이 마지막 추수기에 가지는 영적인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다.
현재 마지막 추수기에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벽은 이슬람이다. 인도네시아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중동과 사하라 이북의 아프리카권 전체에 흩어진 크리스천보다 더 많은 수의 크리스천이 인도네시아에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교회는 태생적으로 이슬람 선교의 책임과 부담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곳에 세워지는 선교 목적의 대학은 이슬람권 전체를 결국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게 마련이다.
이십 세기 들어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한 종교는 첫째가 기독교이고 둘째는 이슬람이다. 그러나 성장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이슬람의 성장은 자연 증가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즉 아이를 많이 나아서 인구 증가를 통해서 교인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 외에 식민주의가 물러나고 그 빈자리에 민족적인 자각이 강해지면서 외세에 저항했던 이슬람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독교는 식민주의자들의 종교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식민주의를 경험한 민족들 안에서는 배격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삼세계에서의 기독교의 성장은 놀라운 현상이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오히려 식민 세력이 물러나면서 자발적으로 기독교를 자신의 신앙으로 선택하는 사람의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천구백 년대 초반만 해도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있었고 80퍼센트 이상이 백인들이었다. 그런데 백년만에 기독교의 얼굴이 바뀌었다.
백인 기독교 인은 전체 기독교인의 삼분의 일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서 이들의 수는 계속해서 줄고 있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유럽에서 계속해서 진행되어 온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교인 수가 줄어서 교회가 문을 닫고 그 교회가 술집이나 이슬람 사원으로 팔려가는 현상을 접하고 있다.
그 결과 기독교가 위기 상황에 있다는 착시 현상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무슬림들이 한국 땅에 이슬람 선교사를 보내고 회교사원을 짓는 경우를 보고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다.
물론 제도화되고 형식주의에 빠진 교회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밥이 되어 왔다. 동방 시리아 교회가 그랬고 그리스 정교회가 그랬다.
그리고 유럽의 개신교가 그런 운명을 맞고 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교회는 이슬람의 영역에 침투하고 그 가운데서 구원받는 자를 더하는 능력을 가진다. 중국, 인도네시아, 아프리카의 교회는 그 좋은 예이다. 한국 교회가 성장이 멈추고 이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교회가 제도화 형식화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돌이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부흥이다.
역사적으로 발생한 부흥의 예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부흥의 주역으로 세우신 사람들은 제도권 교회로부터 배척 받았거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자신이 정통 교단에 속해 있다고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을 부흥의 주역으로 세우신 예가 없다.
유럽의 경우 종교 개혁을 시작했던 마틴 루터는 카톨릭 교단으로부터 이단 정죄를 받았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도 영국 성공회로부터 쫓겨나야 했다.
미국에 첫번째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을 때 주류 교단은 회중 교회와 장로 교회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류 교단을 사용하시지 않고 미국에 막 도달했던 후발 주자인 감리교가 그 부흥을 주도하게 하셨다. 그 후 감리교가 주류 교단으로 자리 잡게 되고 자신의 틀 속에 갇혀 버리자 두번째 대각성 운동에서는 당시 주류로부터 배척받았던 후발 주자인 남침례 교단이 크게 성장하는 흐름을 타게 되었다.
그 후 이 모든 교단들이 자기들의 세계에 갇혀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20세기 초반에 오순절 운동을 시작하시고 그들이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부흥의 단초로 섬길 기회를 주셨다.
지금 남반구와 아시아권에서 성장하는 교회의 대부분은 오순절 계열이거나 독립 교단이다. 이미 전세계 개신교 계의 가장 큰 교단은 오순절 계열이 되었다.
오순절 교단이 기성 교단이 보는 몇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교회 확장을 위해 강력하게 쓰임 받고 있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다는 것과 주류로부터 배척 받는 연약한 존재로서의 시기를 보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의 예에서도 보이듯이 이슬람권의 높은 벽을 넘는데 있어서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은 필수불가결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이슬람의 벽을 두드리신다.
지난 세기의 후반부부터 하나님께서는 이슬람권을 크게 흔들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많은 관찰자들은 이 현상을 마지막 추수기 때가 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4-5년 전에 나온 보고에 의하면 이란에서는 지하교회 성도가 십만을 넘었다고 한다. 유투브에 이미 올라가 있는 나이지리아 복음 사역 비디오(Evangelism Nigeria로 검색하면 됨)를 보면 1990년대 후반 아프리카권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복음 사역자 봉케 목사가 도시마다 집회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루 집회에 보통 백만 많게는 삼백만명의 결신자가 생겼다. 수많은 도시를 돌면서 천만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내가 사역하던 몽골 국제 대학교에 나이지리아 출신 목회자가 학생으로 들어왔다. 내가 나이지리아 부흥에 대해서 묻자 그는 말하기를 아데바데요 목사가 이끄는 교회 교인이 백만명 정도로 제일 크긴 하지만 자기가 다니던 교회도 교인 수가 50만명 되는데 그런 교회가 몇 개 있다고 전했다.
특이한 일로 그가 언급한 것이 있는데 자기 교회에는 밤새 이름 모를 헌금이 헌금함에 쌓이곤 했다는 것이다.
그 헌금은 주로 주변 지역의 무슬림들이 와서 내는 헌금으로 밝혀졌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삶에 복이 임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가 그 교회에 헌금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복을 받고는 싶지만 신분이 드러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밤 사이에 와서 몰래 헌금을 놓고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교회는 주변의 불신자들에게도 경외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내가 볼 때 전세계적으로 이슬람권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크게 다섯 곳이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남단에서부터 올라가는 사막 길, 중앙 아시아 카작스탄을 지나는 초원 길, 중국 서북부를 통해서 중앙 아시아로 들어가는 비단 길, 인도를 통해 올라가는 향료 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를 지나는 바다 길이다.
길이 중요한 이유는 이슬람권에서는 네트워크를 이루지 못하고서는 기독교 공동체가 생성되고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는 사람과 물류가 다니는 길을 따라서 상인들과 전도자들을 통해 전파되어 왔고 이슬람도 그 길을 따라 왔다.
인도네시아 땅에 와서 이곳의 선교적 가능성을 보면서 이 땅의 교회가 다음 세대 선교를 위한 교두보로서의 부르심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이 주신 꿈이 실재하는 것처럼 구체화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꿈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내게 주신 것이지만 이것이 지금 내 안에서 분명하게 각인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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