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고난 주간과 부활 주일 주간을 이용해서 유럽에 있는 한인 교회를 말씀으로 섬기는 사역을 하러 다녀왔다. 삼 년 만에 유럽 지역에서 일정을 갖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는 유럽 침례교 선교사 분들을 섬기는 일이었다.
거기에서 만난 한 목회자 분께서 질문하셨다.
그 분은 십 수 년째 유럽에서 목회와 사역으로 섬기면서 늘 시간에 쫓기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외부 일정을 가지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질문하셨다.
“기독교 관련 신문을
보다 보면 선교사님이 이곳 저곳에서 집회하는 광고나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부 일정을 많이 가지면서 어떻게 맡은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이 부분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질문일 것이다. 실은 쏟아지는 집회 요청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나에게 여전히 숙제로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가 몇 년의 경험 가운데 쌓아온 몇 가지 원칙들을 나누었다.
필자가 몸담아왔던 교육 사역은 대부분 연합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 출장이 잦은 편이다. 누군가는 외부와의 연결을 위해 출장을 가야 하는데 보통 집회를 잡을 때 출장 기간을 이용해서 그 기간에 맞출 수 있는 집회에 한해서 집회 일정을 수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렇게 하면서 경비와 시간을 절약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자가 정해진 집회의 경우는 요청이 와도 섬겨드리지 못하는 예가 다반사다.
그래서 보통은 아무 때나 내 일정에 맞춰줄 수 있다고 하는 형태의 요청은 리스트 업을 해두었다가 일정이 맞는 경우에 연락해서 맞추게 된다.
보통 우선순위를 두는 집회에 한해서 일자를 맞춰서 가야 하는 집회를 허락하게 되는데 그 경우는 필자의 사역과 파트너십을 가지는 교회나 단체, 필자와 함께 하는 사역자를 파송한 교회가 요청하는 경우이다.
또는 해외의 한인 교회 중 선교지에 있는 교회의 집회에 우선순위를 준다.
그 중에서도 연합집회나 청년집회가 더 우선권을 가진다. 그 이유는 내 부르심의 하나가 이들 교회와 그룹들을 깨우고 돕고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나가지 않고 한 번 나갔을 때 여러 건의 집회를 몰아서 섬기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가능하면 두 주를 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가정을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해서이고 또 사역의 연계성을 고려해서 만들게 된 원칙이다.
집회 초청하는 쪽에서 어느 정도 사례해야 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었다.
필자의 경우는 사례비 가운데 교통비를 제외한 비용들은 대부분 팀원들과 나누거나 필자가 몸담고 있는 재단과 학교 사역비로 충당하려고 하고 있다. 사례를 위해서 사역을 나가는 것은 아니다.
집회 요청 관련한 메일들을 받으며 집회 요청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를 놓고 기도하던 가운데 잠언에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셨던 기억이 있다.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찾으리라”라는 내용이었다.
집회 사역은 중요한 사역이지만 필자의 주된 부르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사역을 한다고 내가 선교지에서 감당하고 있는 사역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씀 집회와 내 현재의 사역을 연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외부 말씀 집회를 갖는 중에 특별한 요청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현재의 본인의 사역에 대해 나누지 않는다. 그 모임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나누기 원한다.
이것이 물 위에 내 시간과 노력을 던지는 마음으로 말씀 사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감사한 일은 그러한 말씀 사역의 현장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후원이 집회 사역을 통해서 연결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도 나의 미래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러 날 후에” 찾는다는 말씀에 있어서 핵심은 찾는 때와 찾는 방식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이 때와 방식을 결정하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바라고 우리를 던지는 것이다.
내가 집회의 현장에 편안한 마음으로 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내 사역은 늘 팀 사역이었다는데 있다. 몽골에서 이레 교회 사역을 할 때에도 내 주변에 나를 돕는 사역자들이 많이 있었다.
평균적으로 다섯 명 이상의 한국인 사역자와 또 여러 현지인 사역자들이 팀으로 사역했다. 그랬기 때문에 대략 두 주 정도 내가 빠지더라도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다.
현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여섯 가정이 함께 사역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언어적으로나 말씀 사역 면에서나 인격적으로나 다 필자가 본받기를 원하는 훌륭한 부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이 나의 빈 자리를 표나지 않게 메워주고 있다. 필자의 사역의 목표는 내가 필요 없어지는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필자와 필자의 팀은 현재 많은 필요 가운데 쌓여있지만 그것이 하나씩 줄어져 가서 내가 할 일이 보이지 않고 누군가가 내 일을 대신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나의 보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아마도 내가 떠나야 할 때가 될 것이다.
한 번은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한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님과 그 분을 수행하는 비서실장 목사님과 만나서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필자도 동역하는 선교사와 동행하고 있었다.
비서실장 목사님이 자신을 소개하자 나의 동역자 선교사도 웃으면서 자신을 자칭 필자의 비서실장이라고 소개했다. 필자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물론 그 선교사는 내 비서실장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주고 있다.
필자가 병원에 두 달 반 이상을 입원해 있었을 때 네 아이 때문에 아내가 함께 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형제가 한국으로 날아와서 나를 돕는 일을 자청해 주었다.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해 주었다.
심지어 필자의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잡아놓은 집회 일정을 취소해야 하는 일이 있었을 때 급박한 취소로 인해 대체할 말씀 사역자를 찾지 못한 경우 그 형제가 땜빵을 해주기도 했었다. 집회 주최측으로부터 들려온 이야기는 대타가 나와서 만루홈런을 친 경우와 비슷하다고 했다.
어쩌면 회사의 일반 비서실장 이상의 임무를 감당해 주었다. 하지만 그 직책 사이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첫째는 우리의 경우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의 경우는 월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감사해 하는 사실은 사례를 받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서 필자를 도와서 사역해 주는 팀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순전한 마음과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는 사람들만 함께 갈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파송교회가 있거나 혹은 개인 후원을 통해서 생활을 위한 재정적인 필요를 채운다. 하지만 그 액수가 이곳 국제 도시인 자카르타의 물가에 맞추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감사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서 밥을 굶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공급의 통로를 만들어 주셔서 각자가 필요를 채울 수 있게 해 주신다.
한 번은 사역자 한 명의 얼굴이 어두웠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아이 학교 보낼 등록금이 부족해서 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 날 이후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급히 돈을 마련해서 채워주었다. 그 사실에 대해 나중에 전해들은 주변의 사업가들 중에 그 선교사의 영적인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정기 후원을 결정해 줌으로써 어려움이 전화위복의 결과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믿음으로 사는 삶 가운데 끊임없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누리게 한다.
이 세상에는 오천명 분을 소유하고 소비하려고 애쓰는 사람과 오천명을 먹이려고 애쓰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을 먹이려고 애쓰는 사람은 많은 것을 잃는 것 같지만 실은 그 결과로 많은 것을 누리게 된다. 한 예로 필자가 선교지에 처음 갔을 때는 미화로 약 백 불 정도가 모자라는 삶을 살았다.
좀 더 지나서 사역이 커지고 영향력이 생기면서 천 불 정도가 모자라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만 불 정도가 모자랐다. 그런데 만 불 정도가 모자라고부터는 더 큰 부담 때문에 먹고 사는 영역이나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십만 불에서 백만 불 단위의 필요를 보게 된다. 이렇게 필요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의 영향력과 그릇이 커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함께하는 팀 사역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이 길 끝에는 어떤 보상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사역은 즐거워야 합니다.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보상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보상입니다.”
많은 단기팀들이 우리 사역지를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우리 사역자들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서 감사한 시간을 가진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강한 전염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그 사람의 매력이 된다. 필자는 나의 자녀들이 이런 전염성과 매력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가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필자에게 좋은 팀이 함께 연합해서 사역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묻는 경우가 있다. 몇 가지 생각해 보았지만 특별히 이것이다 싶은 이유는 찾지 못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서로를 좋아해 주는 것 그래서 서로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