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역에 대한 반성
나는 2006년 12월 10일 주일을 마지막으로 이레 교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선교사에게 있어서의 내려놓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양을 앞두고 내 스스로 이년 6개월간의 사역을 점검해 보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다.
나는 그 체크 리스트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내 스스로 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며 힘들었다. 그 질문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과연 네가 이레 교회를 섬기는 동안 설교자로써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한 교회의 지체로 섬기고 있었어도 이들이 네가 곁에 있음으로 해서 변화가 일었겠는가? 너의 말이 아닌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이 그들에게 전해졌겠는가?”
내 솔직한 답은 다음과 같았다.
“아닙니다. 주님 마음이 갑갑하네요. 하지만 제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면 그 때는 좀더 이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며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 첫 번째 질문을 리스트에 넣은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몽골에서 사역하시던 최순기 선교사님께서 돌아가신 후 어느 날 김우현 감독님과 함께 그 분이 섬기시던 교회에 찾아가서 리더들과 인터뷰하면서부터였다.
최순기 선교사님은 본래 북파 공작원으로도 활동하신 바 있었던 분으로 미국에 가셔서 보석 가공업을 하셨던 분이다. 이후에 몽골에 파송 선교사로 들어오셨는데 북한에 대해 늘 관심 가지고 사역을 진행하셨다.
북한에 들어가 계시던 중 돌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소식을 받았다. 북한 측에서도 오해 받을까 봐 그 일로 적잖이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포츠맨이시고 지극히 건강한 분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몽골 선교사들도 그 소식에 많이 당혹해 했었다.
그 분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미리 유언을 남기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시신을 몽골 땅에 묻어달라는 것과 장례식에 헨델의 할렐루야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고 가장 기쁘고 영광된 날로 기억해 달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이 유언대로 선교사 합창단들이 모여 장례 예배 때 할렐루야를 부르며 깊은 감동을 경험했었다.
김우현 감독은 교회의 리더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 분은 리더들을 잘 키워놓으셨음을 볼 수 있었다. 최순기 목사님은 부모 없이 거리에 방황하던 아이들을 데려다가 돌보며 주님의 일꾼으로 양육시켰다.
그래서 그 일꾼들은 최 목사님을 아버지, 사모님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최순기 선교사님은 여러 몽골 지체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그들을 아들과 딸같이 키워놓았다. 그렇기에 그 분은 가셨지만 교회는 크게 요동하지 않는 것을 본다.
그 리더들 중 한 분은 “높고 높으신 주님”이라고 하는 몽골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복음 송가 작곡한 목회자이다. 그는 트리니티 대학교의 신학 과정 마치고 돌아와 최 선교사님께서 섬기시던 교회를 이어받아 목회하고 있다.
그 분과 리더들 관계와 관련해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번은 최순기 선교사님이 키우던 사람들 중 한 명이 교회와 집에서 값나가는 물건을 훔쳐가지고 도망나갔다.
원래 거리의 아이로 자랐기에 나쁜 손버릇을 버리기 어려웠다. 또한 공동 생활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해 도망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집이 그립고 또 밖의 생활이 험해서 오래 못 버티고 다시 돌아왔다. 그 날 최 선교사님으로부터의 불호령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최 선교사님은 그 돌아온 탕자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그리곤 등을 돌리라고 하곤 아무 말 없이 등을 열심히 밀어주었다. 목욕을 마치고 배고프니 밥 먹자며 한국 식당에 데려갔다.
거기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피곤할 테니 그만 방에 들어가 자라고 하면서 당신 침실로 들어가셨다. 그 지체는 이제야 혼나겠구나 하며 숨죽이고 꾸중을 기다렸다가 허탈해졌다.
그러면서 그 날 밤 몹시 울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집을 나간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행정 책임자로 잘 섬기고 있다.
한 리더는 내게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최 선교사)가 너무 그리워요. 그 분은 항상 귀한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 친아버지보다 그 분이 우리 진짜 아버지지요.”
아버지가 그립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인터뷰 중에 나는 구석으로 가서 눈물을 훔치며 막 울어버렸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감동도 있었겠지만 내 상황과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내 사역의 마지막 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내가 이레 교회를 떠나게 되는 날 내 지체들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회상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떠나는 날 참 슬픈 날일지도 모른다. 같이 많이 울겠지.
하지만 과연 내가 이곳을 급하게 떠날 상황이 되었을 때 이레교회는 동요 없이 설 수 있을까? 교회에서 내 빈자리가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더를 키우는 데 소홀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과연 내가 없는 기간 교회의 집사들과 리더들이 나 없이도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교회에 충분히 리더십을 이양했는가?
결국 내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사역하는 것이 내 후기 사역의 목표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많은 교회들이 후계자의 진통을 겪는 것을 본다. 전임자가 카리스마를 가지고 사역하는 과정에서 후계자를 위한 자리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나는 사역 초기부터 후계자를 준비시키고 배려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 사역을 마감할 때 후회가 적은 목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순기 선교사님의 경우와 대비되는 사건이 몇 년 전에 있었다. 몽골 교회 개척 사역에 있어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선교사님이 계시다. 그 분이 개척한 교회와 배출한 지도자들이 몽골 교회 곳곳에 퍼져있다.
그런데 그 분이 안식년으로 미국에 일년 나가 계셨다가 돌아오려고 할 때,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 선교사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막았다. 그 분 대신에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선교사님의 사역 기반을 자기들이 접수하기를 원했다.
그 선교사님 뿐 아니라 한국 선교사 전반에 걸쳐 많은 회의와 아픔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 선교사님의 경우 사역은 많이 일어났지만 사람을 얻지는 못했다. 나는 그 세세한 부분은 잘 모르지만 사역 중심적 측면이 관계 중심적 측면보다 강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선교사로 부름받은 우리가 결국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
최 선교사님은 사역적인 부분에서도 아주 성공적인 분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저 이백여 명이 채 안 되는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와 몇 개의 지방의 개 교회 그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분은 사람을 키워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얻었기에 그들 내부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분이 빈 자리를 그들은 몹시 그리워했고 그 분을 필요로 했다.
내가 맡은 교회가 얼마나 성장했고 또 성도 수가 얼마나 늘었는가는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관계 속에 어떤 질적인 변화들이 있었고 주님의 사랑이 흘렀고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 끼쳐졌는가가 우리 사역의 성패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지 않을까?
사역에 임하는 자세
어느 날 식사 중에 몽골 국제 대학 사역자 중 한 명이 금요일 오전이 되면 이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내게 말했다.
일이 많고 책임져야 할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는 상황을 알기에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는 문득 우리가 사역을 하면서 월요일이 기다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금요일 쉬는 것도 더 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동시에 월요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 기다려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노동이 기쁨이 아닌 고통이 된 이유는 선악과 사건 이후 아담에게 찾아온 저주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지만 죄를 지은 후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일은 싫지만 살기 위해서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일의 필요를 보고 그것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와 기쁨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바쁜 일정 중에 거절하기 어려운 곳에서 집회 요청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에 응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말씀 전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내 안에 주님의 감동이 오면 내가 말씀으로 섬길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설렘이 넘치게 된다. 그 일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글을 쓰는 것이 짐이고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더 내려놓음 책을 쓰는 가운데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한 부담감과 글을 쓰는 기쁨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셨다. 그러자 글 쓰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사역은 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월요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 책임만 주어지고 권한이 함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산업혁명 이후 기계 부품의 일부 내지는 소모품으로 간주되어 갔다.
고용된 사람들은 결정권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기 보다는 감시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우리가 아버지가 되는 일에 대해서는 어렵지만 잘 감당해낸다. 책임과 함께 권위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나 아니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고 그 일이 되어져야만 하는 것을 알기에 어렵지만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몽골 국제 대학교를 좀더 행복한 사역처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때로는 교회에서 일하면서 주님이 허락하신 일을 한다고 하지만 기쁨을 잃어버리고 마지 못해서 끌려가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실은 이것이 교회가 가진 잘못된 권위 구조에서 비롯할 수도 있고 또 책임만 주어지고 권위가 위임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로 운영되기 보다는 세상의 지혜가 넘쳐서 시장에서의 질서가 교회 구조를 세우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한 예로 담임 목사와 부목사의 관계에서 기업의 회장과 부하 임원들의 관계가 반영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본다. 부목회자는 언제나 대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리고 그 자리는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거쳐가는 자리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교회가 세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법칙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몽골 국제 대학교 사역에서의 초점
나의 몽골 국제 대학에서 부총장 사역은 첫째로 나와 관계된 다른 사역자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발휘해서 일하는데 어려움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사람에게 주신 직임이 극대화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한 번은 한국에서 기독교 미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는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는 능력도 있고 공부도 잘 했던 재원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것이 의외였다.
나름대로 자신의 소명을 교육에 두고 그 일에 충성하는 모습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배는 새로 임용된 교장 선생님과 또 그 분이 편애하는 주임 교사에 대해 불편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질문했다.
“자네가 지금 사역의 대상으로 정한 그룹이 혹시 학생들만인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이제는 사역의 대상을 넓힐 때인 것 같아. 실은 자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네의 사역 대상이 되어야 해. 예수님은 사역 대상을 한정하시지 않았지. 자네의 예수님은 선한 영향력을 전방향으로 미치셨던 분이거든. 자네가 워낙 재능있는 사람이라 적이 많을 수 있어. 그런데 자네 스스로 ‘저 인간 왜 저러지,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고 판단하기 시작하면 관계가 당연히 어려워지겠지. 사람은 질책이 아닌 격려와 인정을 통해서 변하거든.”
아름답지 못해 보이는 지체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받을 수 있는 겸손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몸의 연합으로 이끌어준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사역지에서 동역자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내가 사역을 가지고 경쟁하게 되는 경우다. 권오문 총장님께서 13년의 선교 경험에 비추어 사역자 예배 때 말씀하신 것이 있다. 선교사의 일년을 보면 그 십 년 뒤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내 것부터 채우느냐 다른 필요를 먼저 보느냐가 실은 사역자의 섬김의 역량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섬기되 상대방이 웃고 만족할 때까지 섬겨주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결국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며 계속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흘려 보내는 사람이 장기간 건강하게 사역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이 일어난다고 한다.
권오문 총장님은 교회 사역의 경험을 통해 보면 변화가 일어나고 신앙에 성장이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보면 모든 훈련 과정에 참여하고 열심히 빠지지 않고 훈련에 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신앙은 의외로 자라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전을 보이지 못하더라고 한다. 배우는 것과 삶에서의 고백이 분리되는 경우이다. 10년 이상을 예수를 믿고 교회에서 훈련을 받아도 삶 속에서 이익에 넘어가 사람을 속이는 경우다.
반면 빌빌하는 것 같고 설렁설렁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삶 가운데 지속적으로 믿음의 간증이 고백되고 신앙에 급속한 성장이 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순전히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살려 하고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변화를 빨리 일으키는 것이 권리 포기이고 또 내 것을 쉽게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의 예수’이다. 이것은 이단도 사단도 흉내 낼 수 없다. 자기 부인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진정한 성장은 일어날 수 없다.
권오문 총장님은 늘 당해야 사역이 일어나더라고 고백한다. 현지인들에게 당하고 또 당해서 현지인들이 보기에 이 경우는 너무하다며 선교사 편을 들게 되면 사역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고 또 예수님의 삶의 모본을 그들에게 삶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선교지에서 두 종류의 선교사들을 본다.
한 부류는 몽골인들에 대해 깊이 실망하는 경우를 보고 그 후로 그들을 믿지 않고 의심하며 규제하려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대체로 사역을 하면서 기쁨이 없고 때로는 관계의 열매도 적고 더욱이 몸도 아픈 곳이 많은 것을 본다.
다른 한 부류는 그저 계속해서 현지인들에게 속아주고 당해주는 경우다. 그러면 망할 것 같은데 사역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사역자에게 지속적으로 내려놓을 것을 요구하신다. 사역자를 복음으로 세우시기 위해서다.
사역자가 무너지는 이유는 그가 잦은 상처에 좌절하고 굳어버리기 때문인데 자기 부인이 되지 않으면 여기서 관계가 깨어지고 자신의 영이 말라가게 된다. 하나님은 집요할 정도로 우리에게 상처주는 사람을 붙이신다. 우리의 온전한 항복을 받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역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있으면서 어느 정도 몽골 상황이 이해되고 또 몽골어를 알면 알수록 더 싸울 일이 많아진다. 몽골 사람들의 속셈이 빤히 보이니까 더 어렵다.
그런데 져주어야 사역이 일어난다. 싸워서 이기면 죽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고 관계이다. 이것은 선교사와 현지인들과의 관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선교사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선교사가 사역의 대상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붙여준 분들은 모두 은혜를 흘려 보내고 섬겨야 할 대상이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연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왕충은 선교사가 한 번은 교직원 기도회 때 길가 밭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람이 많이 밟고 다닌 밭은 딱딱해져서 그 안에서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속적으로 상처받아 마음이 굳은 선교사의 모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영적 싸움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만약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면 정말 비참해진다. 이 상처들을 극복하면 새로운 사명을 받는다. 상처받은 자가 상처받은 자를 섬겨줄 수 있게 된다.
몽골 국제 대학에서 사역하면서 둘째로 나는 성공하거나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면 사역을 즐길 수 있음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일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일해 드리겠다는 생각이 죽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꺾어질 때 사역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선교사 중에 몽골에 와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증명해 보이겠어’라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오래 못 가서 망가지고 만다고 한다. 그래서 독기를 빼고 바보가 되는 작업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과제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초기에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많은 사역자들이 이 과정에서 넘어지곤 한다. 왜냐하면 사역 중심의 사고 방식이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겸손이 핵심이다. 한 번은 내가 어떤 사역자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방식에 대해서 아내에게 지적받은 적이 있다. 최근에 내게 들어온 선물들 가운데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필요할 것 같은 것이 많아서 사역자들에게 나누어 준 적이 있었다.
마침 아내가 내 사무실에 있었는데 나중에 내가 한 사역자에게 선물을 전하는 태도에 대해 물건은 가는데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한 마디 했다. 최근 아내가 더 겸손하라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나서 내 언행에 대해 조언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순간 뜨끔한 생각이 들어서 그 선물을 전달할 때의 나의 마음자세에 대해 돌아보았다. 실은 물질을 나누는 나의 모습 속에서 자부심을 보았다.
학교의 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통로로 사용하셔서 학교에서 필요한 재정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도록 은혜를 주셨다. 내가 외부에서 집회를 하다 보니 선물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학교로 가져와서 사역자들과 나누곤 했다.
봐서 내가 3개월 안에 쓸 것 같지 않은 물건은 사역비가 적어서 긴축 재정 가운데 있는 분들께 돌리곤 했다. 그 날도 물건을 전해주는데 그 안에 내 의가 있었을 뿐 물건과 함께 나의 마음이 실리지 않고 내 의가 실렸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결국 내 행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이 문제의 핵심임을 경험했다.
한 번은 몽골에 방문하신 GO 선교회 대표 주누가 선교사님께서 떠나기 전 현지인 목회자와 선교회의 선교사 분들께 머리를 내밀며 안수를 구한 적이 있었다.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들이나 사역자들의 영발이 제일 센 법’이라며 머리를 내미시며 은혜를 구하는 겸손하신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실은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다른 선교사들에게 안수받겠다고 머리 내미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선교회 대표가 그렇게 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면서 좋은 예를 배웠다는 기쁨이 솟았다.
나는 내 사역에서의 성공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열망보다 크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가 몽골 국제 대학교에서 하는 일이 나를 위한 사역이 되거나 나의 칭찬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사역에서의 성공담이나 내가 가지는 지위가 나의 자존감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갈망이 나를 사로잡고 내가 고집을 버림으로써 주님이 쓰시기에 편한 순전한 도구가 되기를 기도한다.
세째로 나의 이곳에서의 섬김은 물려줄 사람을 찾는 사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 그리고 내 뒤에 올 사람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역이 내게 주어진 임무일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동역자와 다음 세대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다.
몽골 국제 대학은 몽골 주변 지역에 흩어진 소수 민족들을 섬기기 때문에 영어로 교육할 수 밖에 없다. 영어를 잘 하고 또 타문화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을 잘 품을 수 있으면서도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 리더로 서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몽골로 부르신 기간에 대해서 늘 주님의 뜻을 구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MIU의 일을 놓으라고 하시면 기꺼이 내어드리기 원한다. 하지만 힘들어도 붙들고 있으라고 하시면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자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학교가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힘이 든다. 책 인세나 강사료 등을 가져다 부어도 학교 재정은 여전히 압박을 받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이 학교를 맡기 전부터 학교가 진 빚들이 있는데 그것의 만기가 돌아오고 또 건축을 위한 대금 지급 등으로 인해 재정 압박이 크다. 학교의 성장을 위해 보면 해결되어야 할 것이 수도 없이 눈에 뜨인다.
사역을 놓고 도망가면 편할 것 같을 때가 있다. 책임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오해받을 때 오는 힘든 상황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내가 이곳에서 훈련받는 것이라면 주님의 뜻 가운데 평안히 거하기를 원한다.
주님의 선한 영향력을 실제적으로 증거하지 못하는가..?
의 문제로 늘 고민이 많았었는데...
선교사님의 글과 최순기 선교사님의 일화를 통해
깨우치는 바가 무척 큽니다.
어쩌면 최 선교사님의 선교방식이야말로 가장 주님을 닮은
선교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우리는 아버지(최 선교사)가 너무 그리워요.
그 분은 항상 귀한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 친아버지보다 그 분이 우리 진짜 아버지지요.”
라는 글을 읽으며...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그러하듯이
우리 또한 선교나 전도를 함에 있어서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당해야 사역이 일어나더라고 고백하신 권오문 총장님의 말씀도
무척 인상적이였는데...
당했다고 생각이 들때마다 총장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
선교사님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갈망이 나를 사로잡고
내가 고집을 버림으로써 주님이 쓰시기에 편한
순전한 도구가 되기를 저 또한 간구하렵니다.
사역을 놓고 도망가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살아가고 계시는 선교사님께...
더 큰 강건함과 더 깊은 평안함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믿으며...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