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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한 자매로부터 상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고 기도하다가 이 주제를 가지고 주일 설교를 하는 것이 우리 교회에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글을 참고하면서 준비 중인데 그 내용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잉그릿 로렌즈 사모의 글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교회 안의 원수를 품어 주기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우리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듣게 마련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부모나 가족들에게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특히 교회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뼈아픈 비판의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저리게 만든다.  더군다나 우리가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는 판단을 받게 될 때, 우리는 부끄러움에 싸여 “나는 나빠”, “부적절해”, “다 그만 두자”라는 생각을 하고 교회 공동체로부터 숨고 싶어진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 큰 마음의 짐이 된다.  그러다 자기가 양심상 거리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비판한 자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기고 한다.  

우리의 교제권 안에 있는 “원수”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나?  같은 교회의 형제 자매에게 느끼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일단 우리는 분노하면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싶어진다.  

사탄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기 위해 우리 안에 숨어있는 분노를 이용한다.  우리 안에 분노가 그대로 남아있는 한 우리의 공동체를 향한 소망과 기쁨은 자리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가장 큰 숙제는 어떻게 분노를 제거할 것인가 이다.  

다음 단계는 이것이 참을 사안인지, 직면해서 해결을 보아야 할 문제인지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대면하고 상호 화해를 추구할 때, 분노는 쉽게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요원하다고 판단되면 그래서 분노가 계속 잠재해 있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나 멘토에게 털어놓되, 비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제거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물론 당신이 계속 바른 길을 가려하더라도, 상대방이 계속 아픔을 준다면 당신의 분노도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분노를 해소하는 데 더 노력을 해야 하고, 당신이 용서해야 할 몫은 더 커진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 시점에서 위로가 된다.  

내게 분노를 주는 사람을 우리는 군대에서 빨간 모자를 쓴 유격 조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군대 생활을 하다보면 반드시 몇 번은 이 빨간 모자의 유격 조교를 거쳐가야 한다.  그와 마주치는 것은 괴롭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그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더 연단받고 훈련된 군인이 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그 훈련 과정을 통과할 때까지는 계속 그 조교 아래서 시달림을 받지만 우리가 유격 훈련을 마치고 나면 그 조교를 우리는 다시는 만날 이유가 없게 된다.  오직 그 훈련을 받는 기간 동안만 우리는 그를 조우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직면하게 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를 보여준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을 좋아해야 한다거나,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그들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계속 죄를 지을 수 있게 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즉 아가페 스타일로, 그들이 받을 자격이 없는 선의를 베풀어 주라.  그들을 의도적으로 축복해 주라.  의지를 가지고 그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기도 가운데 축복하라.  

우리에게 있는 상처와 거절감과 실망을 잠재우고 부끄러움을 씻어주는 평화가 임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 안식할 때다.  우리가 불안전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사랑을 베풀기에 부족하지만 우리를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항상 구하고 있음을 기억할 때, 우리의 마음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허영석

2006.08.26 01:07:35

이 글을 읽고 나니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을 좋아해야 한다거나,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말씀이 위안(?)을 주네요. 또한 "그들은 의도적으로 축복해주라. 의지를 가지고 그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기도 가운데 축복하라"는 말씀은 사랑이 감정의 문제를 넘어서서 매일 저의 죄성을 쳐 복종시키는, 시간이 걸리는 의지의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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