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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사용에 대해

나의 유학 기간에 물질에 대해 훈련받았던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로 공급에 대한 신뢰에 대해서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공급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도록 나를 인도하셨다.  몽골에서의 물질에 대한 훈련은 다른 차원에 관한 것이었다.  주로 나눔의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소유하는 물질에 대해서 소유권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몽골에 도착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학교가 과학원으로부터 임대해서 사용하는교실에서 강의를 마친 후 신형 노트북 컴퓨터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대해 내려놓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아래는 이에 대해 홈페이지에 기록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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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지난 화요일 첫 강의 끝나고 학생들과 이야기하다가 노트북을 강의실에 놓고 나와버렸는데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가져간 것인가 하는 생각에 낙담이 되었습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실망감이 몰려오니까 의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몽골에 처음 온 사람들의 초기 정착 과정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무기력해지면서 몽골 땅과 몽골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경우를 상기하게 되면서 사탄이 그러한 일들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고 보니 그 주 주일에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렸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많은 것을 내어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제 것을 주장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내려놓는 일이 어찌나 어려운지...

실은 저의 최신형 IBM 노트북은 제 재산 목록 1호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귀중한 화일들이 들어있었는데 그 중에는 최근에 넣은 자료들 중 미쳐 복사하지 못한 것들도 많이 들어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제게 "그것조차도 나를 위해 버릴 수 있니?"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하나님께 컴퓨터도 내려놓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컴퓨터를 찾고 못 찾고의 여부를 떠나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몽골 땅과 몽골 사람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세상 것이 줄 수 없는 평안이 나를 덮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여전히 웃고 다니니까 학생들이 컴퓨터를 찾았느냐고 물어보더군요.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기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학기 저는 교수진 중 유일하게 전교생을 모두 가르치게 되었기 때문에 제 얼굴이 MIU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기도제목 중 하나가 이곳 생활에서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었는데 이 기쁨은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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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왜 있어야 했는지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MIU에서 여름 학기강의를 돕기 위해서 온 TMI 단기팀 중에 한 명이 고급 사양의 디지털 캠코더를 교실에서 잃어버렸다.  허탈해 하는 가운데 있던 그 자매에게 내 노트북 컴퓨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이야기가 위로가 된 것 같았다. 기도 시간에 그 자매가 많이 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도전이 되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이기도 함을 느낀다.  또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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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 팀과 함께 지방 사역을 하고 난 후 그 분들이 강한 영적 도전을 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워낙 훈련이 잘 된 팀이라 좋은 사역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그 시간을 아껴서 전도하도록 도전을 주었는데 기쁨으로 그 일들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왔습니다.

한 번은 수요일에 저희 교회를 방문해서 전도집회를 하기 전에 팀원 중 리더 한 분이 식당에서 새로산 디지탈 카메라를 잃어버렸습니다.  팀원들 표정이 밝지 않고 어수선한 상태로 저희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제가 잃어 버렸던 노트북 이야기를 꺼내면서 하나님이 달라시면 그것도 아낌없이 드리겠다는 고백을 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명의 아파했던 경험은 다른 아파하는 사람을 위로한다는 진리를 다시 느꼈습니다.  저는 그 팀에 도전을 주면서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보다는 적극적으로 주는 마음을 가지자고 했습니다.  

그 분들이 한 끼를 금식하면 석달 지방 사역을 위한 재정 또는 한 학기 학생들의 등록금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팀의 마이크 장착이 가능한 기타 같은 경우 뭉크가 교회 찬양팀을 위해 오래도록 기도하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혀 다른 팀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내용을 적극적으로 말하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결국 몽골에서의 사역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계략은 우리가 사탄의 생각과 반대 방향, 즉 적극적으로 나누는 자세로 나아갈 때 분쇄되어짐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내 것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누려고 할 때 우리는 더 풍성하게 하나님을 누리고 체험할 수 있음을 봅니다.

결국 제가 지방 여행을 다녀와보니 그 팀이 기타를 포함해서 많은 물품을 이레교회를 위해 헌물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국 나누는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됨을 느꼈습니다.   이레 교회도 흘러들어 온 물품을 다른 이웃과 나누는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고 오늘 설교 시간에 언급했습니다.

얼마 전 YWAM에서 저희 교회의 영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며 그 곳에서 화요일 찬양 예배를 드려도 좋으냐고 물어왔습니다.  선뜻 좋다고 했더니 오히려 그 쪽이 당황했습니다.  사례를 어떻게 하랴고 물어보길래 편하게 기도 가운데 결정하시되 주시지 않아도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남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야 하는데 우리가 남는 것 중에 하나가 화요일에 비어있는 교회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저희가 다른 팀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가진 남는 것을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나누는 것이 우리가 더 크게 받을 수 있는 열쇠가 됨을 이레 교회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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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사역을 하면서 도둑질이 만연하고 부정직의 영이 이 민족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본다.  교회마다 선교사들이 속은 이야기들이 많다.  학교의 담도 밤새 사람들이 뜯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몰락한 유목민들이 도시로 들어와 맨홀에 살면서 살기 위해 저지르는 생계형 도둑질이 있는가 하면 정부 고위 관리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의 것을 가로채는 일이 너무나 만연해 있다.  현지인 목회자를 세워도 대부분이 돈문제에서 정직하지 못해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역자도 예외가 아니다.
이곳에서 사역하면서 물질에 대해 정직한 리더를 만들지 못하면 사역은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돈의 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돈을 따르는 한 결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수 없다.  돈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돈을 추구하는 탐심의 영이 우리를 장악하는 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다.
많은 분들이 몽골인들이 원래 물질에 넘어진다고 말하지만 실은 이 부분은 민족적 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영적인 부분인 것이다.  칭기스칸 당시에는 도둑질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는 형벌에 처했다.  카르피니라는 교황의 사신은 실제로 몽골 제국을 여행하면서 말채찍이 길에 버려져 있어도 자기 것이 아니면 주워다 쓰는 일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결국 라마 불교의 기복주의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오래도록 영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라고 해서 도둑질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종종 도난 사고가 발생한다.  감사한 것은 적어도 교회에서는 때로는 뉘우침이나 돌이킴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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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수련회에 25명의 청년들이 참석했습니다.  그 중 5명은 교회에 처음 나온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외에 남서울 은혜 교회팀 10명이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청년들이 워싶 댄스와 율동, 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잘 준비해 왔습니다.  학생들이 즐거워했지요.  그런데 둘째날 세째날이 되면서 몽골학생들의 관심이 게임이나 프로그램 보다는 복음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둘째날 뭉크 바짜르의 핸드폰이 분실되었습니다.  20만원 상당의 고가품이므로 한국으로 말하면 고가의 노트북 정도의 가치라고 보면 되지요.  가방을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새로 나온 학생 중 한 명이 한 일 같았지만 단정지을 수는 없었지요.

학교에서도 얼마전 사역자들이 노트북과 디지탈 켐코더를 잃어버린 터라 마음이 상심되었기 때문에 수련회에서조차 같은 일이 발생한 일에 대해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헝거르 졸이 독방으로 들어가 울면서 기도하더군요.  저도 기도하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청년회장인 툭소와 뭉크 바짜르를 끌고 들어가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저녁 식사후 툭소가 기쁜 얼굴로 광고를 했습니다.  핸드폰을 누가 바깥에 놔두었다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의 마음을 만지심을 느꼈습니다.  헝거르 졸이 울더군요.  뭉크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거봐, 그럴 땐 기도하는거야...  뭉크 네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있는 것 같구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실은 뭉크는 성공하고 싶은 생각이 많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신년에 뽑은 말씀이 "네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구절에 뭉크가 다소 부담을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핸드 폰 사건이 그 구절과 무관하지 않음을 봅니다.  뭉크에게도 좋은 수련회 시간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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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무언가 받을 것을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이 대체로 많은 상황에서 주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나는 교인이 줄어들 것을 각오하고 계속해서 주고 나누고 섬기는 도리에 대해 설교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돈의 영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예수의 제자는 결코 만들어 지지 않음을 보기 때문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보다 말씀을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핵심이다.
감사하게도 교회내에 6만원의 월급을 가지고서도 만오천원을 떼어서 가난한 아이들을 돕기로 결정한 자매가 있다.  그리고 아직은 너무나 작은 수지만 그래도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물질로 섬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물질과 관련된 시험거리는 양극단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질을 보는 즉시 써없애버리거나 아니면 아까와서 쓰지 못하는 것이다.  몽골 사람들은 주로 물질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써버리는 습성이 있다.  반면 선교사 중에는 궁핍할 정도로 아끼고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 분들 가운데는 선교비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다.  가난한 성도들의 귀한 헌금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지인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러다 보면 물질에 정직하지 않은 현지인들과의 사이에 갈등을 초래하곤 한다.  나는 선교비를 아껴야 한다는 주의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갈등의 현장 속에 빠져있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기존의 형태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물질에 대한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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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 전에 아이들 둘과 함께 한 손 가득 장을 봐가지고 택시를 탔습니다.  이곳에서는 택시가 아닌 자가용도 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킬로미터 당 250원씩 계산하면 됩니다.  택시를 타면 보통 400원에서 500원이면 갈 거리인데 그 차 주인은 800원을 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봐주는 셈치고 100원을 더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름값이 올랐으니 200원을 더 내라길래 무시하고 내렸더니 문을 열고 나와서 저희를 노려보더군요.  기가 막혀서 같이 노려보았더니 그냥 차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집사람은 좀 놀랬나 봅니다.  혹시 그 사람이 해꼬지하지는 않을까 해서 얼굴이 질려 버렸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운전사에게 화가 났었습니다.  제가 그 운전사에게 화가 났던 이유는 그 사람이 정직하지 못 하다는 점과 우리를 외국인 취급해서 우리를 속이려 한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이 땅을 섬기러 온 선교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정당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그들과 싸우려 드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단돈 200원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제 손에는 몇 만원 어치 물건이 들려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돈들은 전부 여러 분들이 헌금해 주신 돈입니다.  결국 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제 것을 빼앗기는 것처럼 굴었음을 봅니다.  

때로는 익숙해 진다는 것이 굴레가 됨을 느낍니다.  그래서 익숙한 액수가 아닌 택시비가 요구되면 화가 나는 것이지요.  익숙해지기를 거부하고 차라리 외국인으로 남아있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이 땅에 대해서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자리 이삭은 베지 말고 가난한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몽골에서도 기름값이 많이 올랐는데 택시비는 오르지 않아서 기사들의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저도 택시비의 잔돈은 받지 말고 택시 기사들의 이삭으로 남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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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지인을 섬기러 와서 속을지언정 현지인들과 싸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싸우는순간 선교사는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돈이 중요하다고 보았다면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잡아서 돈으로 후원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속을지라도 나눔에 있어서 넉넉함과 풍성함을 잃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죄된 우리에게 늘 풍성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몽골에서도 동일한 신실함으로 우리의 쓸 것을 지속적으로 채우셨다.  후원을 충분히 모아서 가지 않았지만 늘 쓸 것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번은 교회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교단 파송을 받아 오시는 목사 선교사분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 분들이 교회를 짓거나 사역을 확장하는 것이 쉬워보였고 생활이 안정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해 주머니를 여는 헌신된 신자들의 마음을 의지하라고 하셨다.  
추후에 교회의 후원을 받지 않은 것이 (물론 케임브리지 연합 장로교회가 작은 교회의 어려운 재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정을 위해 감사한 후원을 해주고 계시지만) 왜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의도에 더 민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에 서있을 수 있었다.  나는 사역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도록 나의 삶을 주님께 내어드리기 위해 온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리고 사역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함과 평안함이 있었다.  
여름 단기팀들이 우리 가정에 많은 선물을 주고 갔다.  그 선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섬세하심을 느꼈다.  우리 가정에서 막 떨어져 가던 식료품이나 세제류가 채워졌다.  아내가 살이 빠져 입을 바지가 없었다.  마침 단기팀이 바지 하나를 선물로 남겨주었는데 입어보니 정확하게 맞는 바지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정확하게 공급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우리를 돌보시는지를 경험했다.
코스타(유학생 수련회)를 섬겨줄 것을 국제 코스타 본부로부터 요청받았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비행기표를 주시면 강의를 나가라는 뜻으로 알고 코스타를 섬기겠다고 기도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보시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채우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코스타를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물질을 끊으실 것을 바랐다.  
그 후 특별 헌금이 몇 차례 들어와서 세 군데 코스타를 섬길 수 있는 비용이 채워졌다.  헌금하신 분들은 이유없이 돕고 싶었겠지만 하나님은 그 물질을 코스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시는 싸인으로 사용하셨다.
내가 기도한 것은 상황의 이끌림을 받으려는 사람의 기도와는 다른 것이다.  나의 초점은 물질이나 코스타 참석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공급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물질의 공급 여부를 하나님께 의탁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때 양심의 가책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심은 우리가 신뢰할 만한 출처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몽골에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의 양심에 따라 누군가에게 돈을 주어서 속고 또 관계마저 깨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래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내가 얼마 전 교회에서 배우도록 하신 교훈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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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 중에 극도로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도와야 한다는 충동과 그것을 참고 내려놓고 그들로 하여금 기도해서 스스로 하나님께 얻게 해야 한다는 두가지 지침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가 늘 숙제였습니다.  몽골 교회가 자립하고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홀로 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교인들의 선교사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제 바람섞인 마음이었습니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늘 마음에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결정하기를 교회 구제와 관련해서는 무조건 하나님께 묻고 결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 중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리더로써 교회를 섬기는 분이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이 있거나 급한 가정사가 생기면 개인적으로 돕곤 했었습니다.  동생이 깡패들에 의해 눈 한쪽을 잃었었는데 인도에 가서 수술을 마쳤습니다.  수술비를 돕기 위해 남편의 영업용 자가용을 저당잡혔는데 이틀 뒤까지 갚지 못하면 차가 넘어간다며 돈을 빌려달라며 왔습니다.  몽골에서는 돈을 빌려주면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자고 하며 돌려보냈습니다.  

이틀 동안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제 통장의 돈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쓰라고 하시는 곳에 사용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마지막 날은 마음이 탔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면 그냥 제 자의로 필요한 돈의 일부를 주어버리는 것으로 결정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가운데 내 안에 돈을 주어버림으로 해서 책임을 면하고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한 내 심정은 주어버리는 것이 마음 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을 보고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돈을 안주는 것이 주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내어드립니다."  

결국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응답이 없이는 돈을 주거나 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틀 뒤 지방에 갔다가 저는 처음 뵙는 분인데 그 분을 건너 아는 사람이 저희 교인 중 한 명에게 말한 내용을 통해서 그 분의 소식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연하게 그 집사님이 차를 저당잡히지 않았다는 사실과 돈이 필요해서 제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물론 돈이 필요했겠지만 거짓말이 섞여있는 요청을 들어주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지요.  늘 있는 일이지만 이 땅 가운데 깊이 뿌리박혀 있는 거짓의 영이 어떻게 교인들 가운데 움직이는지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나니 왜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응답하지 않으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돈을 내어주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만약 내가 조급하게 내 감정대로 반응했다면 오히려 그 집사님이 죄 가운데 더 깊이 빠지는 것을 도왔겠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의 삶 가운데 개입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렸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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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내 손에 있더라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을 의탁받은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줄 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나 반대급부를 바라거나 줌을 통해서 그것을 받는 사람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순전한 동기로 주는 것인지 기도 중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 손에 있는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사용하는 것을 훈련할 때 우리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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