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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안을 찾아서 3회의 잃어버린 화일을 복구했습니다.  늦었지만 제2호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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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안을 찾아서 제3호

초기 기독교회는 교리 논쟁을 통해 로마 황제 중심의 교회와 여타 중근동지역 교회간의 분열을 맞게 된다. 주후 4세기 초부터 다음 세기에 걸쳐 분리되지 않았던 교회는 로마 카톨릭, 정교회, 네스토리안 그리고 단성론자(Monophysite)또는 야곱 파(Jacobite)등의 이름을 가진 교파로 나누어졌다. 이러한 분리의 핵심에는 정치적, 지역적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념적, 교리적 차이도 분열의 중요한 구실을 제공했다. 사실상 신앙의 기초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카톨릭 교회가 주도한 니케아(Nicea, AD325)종교 회의로 부터 칼케돈(Chalcedon, AD 451) 회의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성격을 작은 지면을 통해 조망한다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 교리 논쟁 과정은 중근동 지역의 이탈된 교회들의 성립 배경을 다루기위해서는 한 번쯤 꼭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복음은 더욱더 헬라(그리스)와 라틴(로마) 문화에 의해 윤색되어 갔다. 심지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유대인에게 세례를 금했으며,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로마 교회는 배척하였다. 돌감람나무인 이방 교회가 참감람 나무인 이스라엘을 끊어버린 것이다.
당시 로마 교회는 그리스 철학의 틀을 가지고 교리를 세워갔다. 따라서 ‘영’와 ‘육’을 분리하지 않았던 일원론적인 유대적 사고는 이원론적 전통을 가진 헬레니즘적 사고로 재정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교회의 보편화보다 헬레니즘이 만연한 사회에서 유대적 신앙이 설득력을 가지고 확장되기 위한 토착화 과정이라고 볼수 있다.
로마 제국의 교회는 유대적 전통에서 분리부터 창조주 하나님이나 보혜사 성령님보다는 구세주로서의 예수님에게 유독 초점을 두게 되었다. 교회의 헬라화와 함께 유대에서 난 메시아 역시 헬라화되어 갔다. 로마 제국 교회 성화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은 헬라인의 모습이지 더 이상 유대인의 형상이 아니었다. 헬레니즘의 이원론적 사고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된 예수님의 속성은 경이 그 자체였고 설명하기 어려운 숙제로 남았다.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하나의 합의접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논의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어떤 용어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가였다. 결국 수많은 갈래를 만들어 낸 교리논쟁은 어떤 면에서는 유대에서 시작된 신앙이 헬라화 과정에서 빚어진 딜레마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니케아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모두를 인정한 것은 논쟁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분쟁을 야기하였다. 왜냐하면 두 가지 본성(nature)을 인정 하려면 두 개의 본체(subject)를 상정해야 하는 논리상의 문제점이 부각되었기 떄문이다.
그럼에도 네스토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안티오크 학파는 이 부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 주교구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의 인격체로 이해해야 하며 그러려면 그리스도가 하나의 본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것을 단성론이라고 한다.
이 논쟁은 두 라이벌 도시에서 기반을 둔 두 명의 카리스마를 가진 주교들을 중심으로 본격화된다. 즉 알렉산드리아 주교였던 키릴루스와 안티오크파 이면서 콘스탄티노플 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의 종교 논쟁이 그것이다. 알렉산드리아측의 교리는 플라톤적, 철학적, 신학적 요소가 강한 반면 안티오크측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역사적, 해석학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 논쟁은 헬라어 공용권, 즉 헬라 철학적 바탕을 가진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두 학파 사이의 대립은 에페수스 회의(AD 431)에서 키릴루스파의 승리로 귀착되었고 안티오크파는 이단으로 규정된다. 이 회의의 과정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키릴루스는 로마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었고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에페수스 종교 회의에서는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했던 주교들의 도착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네스토리우스를 빼고 진행한 회의에서 그를 파문했기 때문이다.
네스토리우스의 본래 이론은 그를 이단으로 내몬 반대파들에 의해서 왜곡된 형태로 일반에게 소개되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성자 이해는 어떤 면에서 개신교의 예수님 이해에 더 가까운 부분이 있다. 네스토리우스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배경은 당시 로마 카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숭앙해서 마리아의 신적인 지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한 방향 수정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이후 칼케돈회의에서는 알렉산드리아측의 주장의 절반과 네스토리우스 주장의 절반을 취합해서 인간 예수님 한분 안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두 개의 인격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한다는 교리를 채택한다. 그리하여 결국 칼케톤 회의는 양측의 입장을 배격하여 논리적 정합성을 포기하고 복음서의 기재 내용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케돈 회의는 단성론(one-nature Christology)을 부정하면서도 키릴루스를 지지하는 반면, 양성론(two-nature Christology)을 인정하면서도 도리어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모순적인 편파성을 보였다.
이 회의는 기독교 신앙의 통일된 기준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기념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로마 중심의 교회는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크를 중심으로 하는 중근동 지역의 여러 다른 교회들로부터 분리되게 되었다.
이때 알렉산드리아 측은 칼케돈의 신조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는데 결국은 그리스도의 단일한 성질(nature)을 강조하는 단성론을 주장하는 콥트 교회(Coptic)를 형성한다. 비정통파로 이해되고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단성론자로 분류되는 콥트 교회와 야곱 교회, 그리고 네스토리우스 파 등이 이와 같이 성자론을 둘러싼 교리 논쟁 과정을 통해 로마 교회로 부터 분리되게 되는 것이다.

        당시 중근동 지역을 포함해서 그 지역민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의 분열 양상은 중근동 지역민들에게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무함마드가 새로운 종교를 주창하면서 유일신 ’알라’와 단일 공동체인 ‘움마’를 강조했을 때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는 기독교회의 분열 양상에 대한 중근동지역민들의 회의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다수 있다. 성자론을 둘러싼 종교 정치적 분쟁 또는 교회 숙청이나 분리, 대립의 과정은 중근동 전역에 회의와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단일 종교 공동체와 유일무이한 신앙 대상을 희구하는 민심에 이슬람이 호소력을 가지고 파고들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로마 교회와의 분열 이후 동방 선교의 주역으로 떠오른 네스토리우스파를 다룬다. 그들의 선교 방식과 급속한 확산은 이후 이슬람의 동방 진출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 형태와 전략은 여러 가지로 현재의 이슬람 지역선교를 위한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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