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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이전의 하나님의 인도하심

미래와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기까지

내려놓기는 어느 날 하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오랜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면서부터 조금씩 하나님께 내려놓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유학 시절 미래를 맡길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 이전부터 알아온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물을 두려워하던 사람이 수영을 배우기까지는 물에 들어가 긴장을 풀고 물에 몸을 맡겨야 뜰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에 몸을 맡겨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물 속에서 실수해서 물을 삼키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도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 전적인 순종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근거가 되는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치기로 결정한 순간에 이르기까지는 하나님과 그의 사이에 오랜 밀고 당기는 기간이 흘렀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갖기 일년 전 그리고 사라가 아들을 잉태하기 두 달 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때까지 아브라함은 비록 하나님이 자손을 번성케하실 것은 신뢰했어도 자기와 사라 사이에 나오는 아들을 통해서일 것이라는 부분은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차례로 조카인 롯, 종이었던 다메섹 엘리에셀, 여종 하갈에게서난 이스마엘에 기대를 했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지만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이었다.  이성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해 주셨다.  아브라함에게 마지막으로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은 이미 그가 충분히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음을 보아 아셨다.

아브라함의 실수로 일관된 여정이 우리에게 많은 참고와 위로가 되듯이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려놓는 것이 주는 기쁨과 자유를 경험해 가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 막 내려놓기를 결단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의 신앙 생활에도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늘 갈등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무던히 참으시며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나를 인도해 가셨다.  지금 잠시 오랜 그 싸움 사이에서 방황하고 실수하던 시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나는 전주 이씨의 한 종가집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셨던 어머니는 기독 여성이 종가집 맏며느리로 들어가는 것이 어떤 고난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인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아버지와 결혼하실 수 있었다.  더욱이 할아버지는 독실한 원불교 신자셨다.  경전을 일어로 번역해서 원불교 일본 포교를 도우셨던 분이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전국 사찰을 여행하시는 할아버지를 따라 절에 다니며 부처에게 절하곤 했다. 한편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며 예배에 참여하던 삶을 살았다.  스님들이 나를 보며 앞으로 출가하면 좋겠다는 말을 할 때면 어머니는 그러한 말을 듣기 싫어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오랜 기간 동안을 처마밑에 성경책을 숨기고 주일 조용히 교회에 다녀오는 생활을 하시면서 괴로와 하셨다.  아버지가 함께 교회에 나가시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친척으로부터의 어머니에 대한 핍박과 모멸을 옆에서 보면서 내가 그 아픔에 동참할 것인가의 문제는 늘 고민이었다. 하루는 교회 갔다가 돌아와 보니 삼촌이 대문 앞에서 서있다가 나를 보고 어디 다녀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교회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밖에서 놀고 왔다”고 시치미 떼고 말했다.  삼촌은 조그만 녀석이 거짓말을 한다며 교회갔다 오는 것 뻔히 아는데 거짓말을 한다며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고 물었다.  

그 사건은 두고 두고 가슴에 남았다.  삼촌이 뻔히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나를 압박하기 위해서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었던 것에 마음 아프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사실대로 말했으면 예수님은 욕먹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컸다.  

동네 교회를 다니던 시절 노방전도를 나가자며 선생님들이 북을 등에 메고 아이들을 앞세워 동네를 행진한 적이 있었다.  작은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동네 약국 앞을 지나가는데 혹시 친척 중에 누가 나를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어쩔줄 몰라하기도 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내 삶을 거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내가 왜 이 길을 가야하는 것인지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이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인지를 계속해서 물어야 했다.  

중학교 시절 나름대로 이런 긴장과 압박 속에서도 교회에 나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하나님이 살아계신지는 확신이 없었던 시절이라 부처는 믿지않아도 혹 착하게 살면 극락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거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교회를 나가는 편이 보다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두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니 마음이 평안할리 없었다.  늘 불안과 불확실성이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찌르게 마련이었다.  

고민이 있던 시절에는 어머니가 집에서 부르시는 찬송가 소리도 듣는 것이 거북했다.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욀 때마다 내가 과연 이 내용을 진리로 고백하고 믿는 것인가를 고민했다.  어느 날에는 그 질문에 자신이 없어서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는 언제인지 모르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과 예수님을 통해서만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졌다.  
내가 믿는 것이 진리임을 고백하자 그 동안 나를 짓누르던 신앙적 고민이 꼬리를 감추었다.  그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을 보내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왕복 세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이 생겼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시국의 급박성, 사회와 민족에 대한 암울한 책임감 그리고 이념의 굴레가 나와 내 학우들의 삶을 짓누르던 때였다. 내 주변의 친구와 선배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투쟁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유물론을 신봉하는 것이 지성인의 필수 요건인 것처럼 비쳐졌다. 학내상황은 투쟁의 이념이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학생들이 모임을 가지기는 커녕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떳떳이 드러내지도 못했다. 나 스스로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나 또한 일부 긍정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내 앞에서 학생들이 끌려가고 맞고 분신해서 죽어가기도 하는데 교회는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혼동과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의 아픔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는 교회를 바라보면서 교회에 다니며 사회에 무관심한 것이 떳떳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으므로 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이웃 사랑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내가 신앙을 부끄러워 했던 더 근본적인 동기가 있었다. 돌아보건대 그것은 내가 집단에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주류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경우 주류로부터 거부될 것이며 그것은 사회적 자아의 매장이 될 것이 두려웠다.  그토록 많은 설교와 성경 공부 속에서도 나 스스로는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많은 것이 세상과 주류를 거스르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술을 먹게 되는 것도 같은 동기에서였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 힘겹게 다가왔다.  세상을 거부하는 것은 곧 패망과 실패로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탄이 주는 두려움이라는 것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술을 먹어도 전혀 얼굴에 표가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멀쩡히 부모님께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가족들이 내가 술을 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적 양심을 건드리시기 시작했다.  

어느 토요일 밤 학과 공식 술자리에서 권하는 소주를 몇 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내 걸음거리가 일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행가 한 곡을 흥얼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문득 내가 주일학교 공과공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내 앞에 나타났는데 내가 그들 앞에 이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부끄럽고 피하고 싶었다.  

그 때 내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니?  나는 매일 네 앞에 있단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한 번도 내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그 후부터는 용기를 가지고 권하는 술을 거절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역시 과 교수님이 권하는 술은 피하기 어려웠다.  교수님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늘 간절했고 또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동기 중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교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었다.  교수님과 모처럼 앉은 자리에서 권하는 술을 마다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느 날 지도교수님 댁 앞에서 권해 주시는 술을 받아 마시다가 지나치게 마시고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깨어보니 후배 두 명과 같이 선생님 댁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그 밤에 교수님 아파트 입구에 많이 토했다고 들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교수님의 관심을 잃지 않기 위해 술을 받았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수치스러운 사태를 빚어냈다는 것을 자각했다.  

술을 끊고나서 과내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로부터의 핍박이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세상과 충돌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워갔다.  내가 신앙적 양심 때문에 술을 할 수 없다고 잔을 거절했을 때, 많은 경우 질타가 목사님이나 교회 중직자 가정 출신들에게서 오곤 했다.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다는 것 그래서 전체의 분위기를 깬다는 것이 주된 요지였다.  
그러나 세상에 한 발을 디디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빛되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내게는 자명한 진리였다.

군대에 가면서 두 가지를 놓고 기도했다.  첫번째는 주일날 예배를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두번째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비록 일년 육개월짜리 방위였지만 훈련 기간을 포함해서 이 결심을 지키는 것은 쉬워보이지 않았다.  

훈련소에 들어가서 첫 주일이 되었을 때, 나는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지 조마조마 했다.  마침 기독교인인 사령관이 부대 시찰을 온다고 해서 예배드릴 인원을 차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병장에 뛰어나가 예배 드리려고 줄을 섰다.  그런데 예배당 자리 수가 제한되어 있던 터라 내 앞에서 끊었다.  
나는 머리를 들이밀고 따라가려고 하자 조교들이 나를 제제했다.  나는 교회에 가서 예배 드려야 한다고 우겼다. 나는 노역을 피하고자 교회가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 앞에서 사도신경을 외워야 했고 교회가는 행렬에 합세할 수 있었다.  
그 날 예배 드리며 많이 울었다.  기도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였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훈련소를 떠나기까지 주일에 계속 예배를 드리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군대 배치를 잘 받은 덕에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의 부대에서 지낼 수 있었다.  훗날 돌아보면서 술을 마시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덕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배려를 해 주셨다고 깨달았다.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하기 전에 중국 여행을 잠시 떠났다.  중국 여행 기간 중 양자강에서의 작은 사건은 다시 한 번 나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던 것에 대해 하나님이 간섭하고 만나시는 시간이었다.  

(양자강의 어느 배 안에서의 이야기 참조)

그 사건은 내가 내 삶의 방향을 세상에서부터 하나님 쪽으로 방향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계속되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나는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것에 대해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씩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임을 배워갔다. 그저 맡기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얼마 후 나는 이미 교회를 다니고 계셨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상의를 거친 후, 가문의 어른들에게 제사 거부를 선언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장손의 권리와 의무를 모두 포기하고 제사를 받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집안 어른들의 압력과 핍박 그리고 멸시는 이미 예상한 것이었다.  
이제는 고통이나 손해없이, 과거의 삶에서부터 돌아섬 없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음이 너무도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할아버지 산소를 집안 어른들과 함께 찾게 되었다.  산소 앞에서 제상을 차려놓고 모두 나를 한 번씩 보고는 절하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무거운 쇠뭉치 같은 것이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압력을 느꼈다.  잠시 무릎을 꿇고 절하는 척하면 그 압박감이 사라질 것 같은 그런 충동이 일었다.  아버지는 그만 암묵적으로 흐르는 압력에 견디지 못하시고 절하시고 술잔을 내셨다.  

아버지의 후퇴를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왔다.  신앙의 연륜이 짧은 아버지로써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을 것이다.  특히 가족과 친족 관계를 극진히 생각하시는 분이시기에…  실은 그 연약한 모습은 나의 예전 모습이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갈등이 두려웠고 핍박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나와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잘 들지 못하시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편한 길인 것 같지만 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 보다도 더 고되고 힘든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광도 기쁨도 성장도 없이 그저 세상의 눈치를 보며 때우고 모면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세상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두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그가 비록 하나님을 알지라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세상을 섬긴다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깨달았다. 사탄이 우리를 속일 때 잠시 십자가를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오늘은 내려놓고 내일 잡으라고 한다.  아주 쉬운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을 했을 때 결과는 비참해진다.  곧바로 영적 침체와 자괴감 또는 그것을 가리고자 하는 위선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탄이 원하는 것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라기 보다는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사역 초기의 예수님을 찾아와서 절하기만 하면 세상을 다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복학해서 대학에 다시 들어가서 얼마 후 나는 신앙의 양심을 따라 과내의 믿음의 형제들과 과 기독인 모임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93년도에 시작한 과내 기독인 모임은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하나님이 허락하신 작은 기적이었다.

그 이전의 선배들 중에도 물론 독실한 기독인이 있었고 그 중에는 졸업 후 신학대학에 입학하고 선교사로 자원하여 나가신 분도 계셨다. 또 학과내 교수님이나 타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본과 출신 교수님 중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계시기도 했다. 그러나 본과 재학중인 학생들이 과내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와 기도가 필요했다.

당시 함께 모임을 가졌던 후배들 중 많은 수가 학문의 길을 택했고 나와 비슷한 길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은 하버드에서 중앙 아시아사 박사과정 중에 있다.
다른 한 명은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중이며 현재 하버드 대학 옌칭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 있으며 내가 보스톤에 있을 때 다녔던 교회를 섬기고 있다.  
또 다른 한 명은 이스라엘을 품었던 자매인데 기도 중에 이스라엘로 갈 것을 권해준 적이 있었다.  히브리 대학 석사를 마치고 예일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다른 한 자매도 현재 동경대학교에서 일본사를 전공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기도했던 그룹들을 하나님께서는 해외로 보내시고 가장 좋은 연구 기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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