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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패러다임의 변화: 이민 교회의 선교 자원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선교계는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그들이 이루었던 성공 못지 않은 실수와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는 시기를 가졌다.  특별히 문제점으로 부각된 것은 선교사들이 가진 제국주의적 태도와 사고에 대한 것이다. 선교사들을 파송한 나라들은 당시 대부분 제국주의의 팽창 논리를 가지고 제삼 세계를 침탈하고 있었고 선교사들은 자신을 파송한 나라의 물리적 경제적 힘을 등에 업고 보호받으며 선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중에는 선교 본국의 일반인들이 식민지와 식민지의 국민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태도를 선교사가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한국 교회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국 교회와 한국의 파송 선교사 사이에 여전히 제국주의 시기의 구미권 선교가 가졌던 문제점을 여전히 고수하거나 인식의 문제를 전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본호와 다음 호에서는 이와 관련된 문제점들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검토하는데 지면을 할애하고자 한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세계 선교의 영향으로 제삼 세계에서는 선교사라고 하면 노랑머리의 코 큰 서구형 인물들을 연상하곤 했다. 선교라고 하면 잘 사는 선진국에서 가난한 제삼 세계 국가로 가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또한 한 번 선교지로 가면 그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장기 거주 선교가 이상적인 모델로써 비추어졌다.

그러나 20세기 말을 지나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이제 점차 선교의 무게 중심이 구미권에서 아시아권으로 옮겨지고 있고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의 선교사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교회 출석률은 계속 줄어들고 이슬람권에서 온 이민자들의 증가로 인해 기독교인의 숫자보다 무슬림의 숫자가 더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피선교국으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에 대한 선교에 대해서는 아직 그 필요성이 충분히 공감되고 있지 않다. 특별히 이러한 선진국에 온 무슬림 이민자들을 선교하고 그들 이민자 중심의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들의 모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선교 지원사역을 하도록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역이 된다.  이러한 방법은 이슬람 국가 현지에 외국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사역 모델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교지의 한인 교회 사역이 한국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국 교회가 새롭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 외국인에게 법적 테두리 내에서 허용된 한인 교회는 선교사의 보호막이자 초기 정착을 돕는 기능을 할 수 있다. 또한 창의적 접근 지역 내 또는 인근의 거점도시에 위치한 한인교회는 인력과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고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오는 단기 선교팀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인 교회에서 양육되는 2세들은 외국인 학교에 다니며 영어 또는 그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경우가 많아서 한국에서 오는 단기 선교팀들을 위한 통역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선교사를 물질적으로 돕거나 다양한 인력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욱이 사업장을 가지거나 현지인들과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관계를 맺는 한인들을 선교 자원으로 동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선교 단체보다 선교사 그룹보다 자체적으로 훌륭한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보이는 초기 이방인 선교는 모두 거점 도시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전도가 일어나고 교회가 개척되면서 그것이 그 지역의 이방인 전도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헬라 문화권 전역에 흩으시고 당시 헬라 문명권의 주요 도시에 거주하며 로마 제국의 문화와 공용어에 능통한 유대인들을 사용하셔서 세계 선교를 시작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한국의 경제 개발과 국제화와 맞물려 한국인들을 다양한 이유, 예를 들어 무역, 정치적 문제, 자녀 교육, 또는 경제 위기 등을 통해 세계로 흩으셨다. 이 과정에서 외국에 나간 한국인 크리스천들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 중심으로 외국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해 갔다. 선교지에 세워진 한인 교회는 자연스럽게 선교에 눈을 뜨게 된다. 사업을 통해서 또는 기관을 통해서 한인들은 선교사들을 간접적으로 돕고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또는 자신의 사업장을 통해서 직접 선교로 부르심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한인 교회의 성도들이 영적 성장을 통해서 자신을 그 땅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그 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경제적인 문제에 쫓겨서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일환이라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자신이 고용한 현지인들을 사랑으로 품고 미래의 전도 대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미국과 선진국에 있는 한인 교회의 가장 큰 장벽은 자신들이 가진 울타리이다. 자신이 미국과 선진국으로 와서 존재하는 이유는 아브라함과 같이 복받은 자로써 복이 없는 자들에게 그것을 나누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한인 교회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은 남의 나라에 세들어 온 사람처럼 위축되기 쉽고 언어와 문화 장벽으로 인해 그저 자기들끼리 편한 공동체를 만들고 남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쉽다. 자신 주변의 백인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혹시 차별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기에 이들 현지인들의 구원과 복을 위해 한인 교회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의 선교의 특징은 선교 모국과  피선교지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 선교 본국이었던 나라가 급속하게 선교사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나라로 변화되어 버린다. 또한 제삼세계의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민을 가고 또 선진국에 있는 사람들은 제삼세계에 가서 살기도 한다. 한국도 이제 이러한 물결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보내는 선교사와 보냄을 받는 선교사라는 이중적인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내가 있는 삶의 현장이 가장 중요한 선교의 장인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기독교인을 선교사로 부르셨으며, 본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크리스천의 삶은 필연적으로 선교적 삶으로 귀결된다. 본인 스스로가 삶의 구체적인 정황 가운데 선교사적인 삶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소유한 크리스천이라고 불릴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의 직분으로 자족하지 말고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선교사로 서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중보 기도를 통해서 선교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현대의 영적 전투는 적진과 아군의 진지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영적 전쟁이 존재한다. 중보 기도는 이 영적 전쟁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무기가 된다.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중보 기도가 중요한 선교의 도구라는 인식이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보 기도라는 무기가 우리 손에 쥐어지면서 우리는 더 이상 선교지에 살고 있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선교사로써의 사명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특별히 이민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집회하는 이유 가운데에는 이러한 인식을 하게 되면서부터 생기는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다.  


서정희

2009.02.17 00:36:34

역 선교의 비전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울타리를 깨는 것이 관건이지요,,

'내가 있는 삶의 현장이 가장 중요한 선교의 장인 것이다...' 아멘..

서정희

2009.03.05 01:44:12

저희 교회 사이트에 퍼가도 될까요?
선교사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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