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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의 기독교 선교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온 논쟁이 있다.  
그것은 서구 문화의 옷을 입고 있는 기독교를 문화와 관념이 전혀 다른 아시아 지역의 타종교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관련된 것이다.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이 당나라 시기 중국에 들어가서 복음에 대해서 설명할 때 그들은 도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차용했다. 다른 문화권에서 그 문화권의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였지만 후대에 이것이 현지 문화나 종교와의 지나친 타협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명대에 중국에 들어온 마테오리치는 그의 유교적 질서와 교리에 대해 인정하고 또 중국인 전통적인 신관인 상제와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일시하여 설명하는 태도로 인해 교계에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유교의 제사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후대에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는 논쟁거리였다. 한 예로 근대 중국 선교의 아버지인 허드슨 테일러는 제사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반면 한국어 성경을 번역하여 초기 한국 선교의 문을 연 존 로스 선교사의 경우는 제사에 대해서 인정하는 쪽이었다.
이 두 선교사는 제사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둘 다 대영 제국에서 온 선교사였지만 종교적 의미가 가미된 토착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존 로스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기 때문에 타종교의 상징에 대한 포용성이 컸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즉 스코트랜드 지역은 수많은 악령에 대한 전설이 존재한다. 스코틀랜드가 기독교화된 이후에도 이러한 영적 전통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과거의 전설적 이야기들이 교회 장식의 일부로 녹아 들어와 있다.
따라서 타종교적인 요소가 기독교 문화와 섞이는 부분에 대해서 관용적인 토양 속에서 로스 선교사가 자란 부분이 그의 선교지 문화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필자는 종가집 장손으로 태어나 제사를 거부함으로 인해 가문 내에서 많은 핍박을 감내하고 권리를 포기해야 했던 성향의 사람인지라 원칙적인 것에 대한 열의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 선교지에서 현지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현지인의 뿌리깊은 무속적이고 라마 불교적인 관념과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지혜가 필요한 부분임을 절감한다.

한 예로 몽골 신문과 방송에서 기독교식 장례 문화에 대해서 분개하며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와 프로그램 방영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기독교가 들어와서 몽골의 전통 문화를 무시하고 또 파괴하는 일을 일삼는다는 것이 그 비판의 요지였다. 몽골 사람들은 장례식에 가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보며 웃어주어도 큰일난다. 종교적 터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장례식에서는 찬양을 하는데 이렇게 장례식에서 노래하는 행위가 몽골인들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던 것이다.

한편 토착화나 현지화는 위험부담도 따르게 마련이다.
지나친 토착화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해시키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몽골어 성경 번역에 있어서 하나님을 어떤 용어로 번역할 것인가도 몽골 선교 초기의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결국 현재 불교 용어로 신 또는 부처를 의미하는 ‘보르항’이라는 단어로 귀결되었다.
초기 성경 번역팀이 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현지인들이 기독교 신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 거부감 없이 수용하게 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예상치 못한 다른 문제와 부딪히게 되었다.
주일에 기도하면서 초신자들은 보르항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자기 집에 두고 온 우상을 떠올렸던 것이다.  전도팀이 전도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 ‘보르항’을 자신들도 믿는다고 생각한다. ‘보르항’을 믿겠다고 영접 기도를 하지만 그들의 세계관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전도팀이 전하는 하나님은 현지인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보르항’ 중의 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근현대에 동남아권을 포함한 대부분 불교권 선교에 있어서 결실이 나타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어를 불교의 용어에서 빌려왔던 점을 들곤 한다.
신앙의 토착화가 내포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결국 선교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의 토착화나 상황화의 대상과 그 정도에 대해서는 일관된 원칙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아는 선교사 출신의 학자 중에 기독교 복음을 현지 문화와 관념의 틀 속에서 해석해 내는데 성공한 탁월한 예가 되는 분이 있다.
그는 7년 이상을 아프리카의 이슬람권 국가에서 NGO 단체를 운영하면서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아랍어를 배웠다. 그 후 예일 대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해서 이슬람 철학을 공부했다.
그 기간 중에 그는 아랍권의 가장 전통있는 이슬람 신학교로 알려진 이집트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대학에 초대받아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가 강연한 주제는 ‘초기 이슬람 철학자들의 예수에 대한 이해’ 였다.

무슬림들이 기독교를 인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삼위일체 교리와 관계가 깊다. 유일신 사상의 틀에서 보면 사람으로 태어난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이슬람 교학자들 가운데는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슬람 신앙의 전통과 철학적 사유 방식을 바탕으로 해서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강연에서 강사는 바로 이 이슬람 교학자들의 논리를 가지고 그 구절을 인용하여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 강연 후 수많은 물라와 학생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그 강연 후에도 그를 찾아와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현지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와 사유 구조를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빛도 없고 보람도 없어 보이는 오랜 시간 동안 뼈를 깎는 인내의 과정을 요구하는 일이다.
브루스 올슨의 “밀림 속의 십자가” (현재 “인디오의 친구 브루츠코”라는 제목으로 다시 번역되어 나옴)는 그의 남미 모틸론 인디오 사역의 경험을 통해서 복음을 현지인의 사유 구조 속에서 이해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현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또 그들의 사고 방식과 전통에 관심을 가질수록 우리는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어떻게 복음을 이해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그 문화 속에 깊이 들어감과 동시에 성령의 섬세한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현지인들과 말씀 안에서 삶을 나누고 교제하면서 그들이 스스로가 복음을 수용하고 또 다른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홍콩의 도풍산에서 라이헬트 선교사가 도교 승려들을 전도했던 방식은 우리가 깊이 상고할만한 예이다. 다음 호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나누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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