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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안들이 지나간 길

이번 호에서는 네스토리안의 선교 사역 그 자체 보다는 이들이 지나갔던 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서 중앙 아시아 선교 방향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몽골 제국을 전후한 시기에 동서를 연결하는 교역로는 크게 세가지였다.  초원길, 비단길, 바닷길이 그것이다.  시리아와 이란 지역에 본부를 두었던 네스토리안들은 주로 초원길과 비단길 이 두 갈래 길을 따라 아시아의 동부와 북부로 진출해 들어왔다.  이 길은 중동 지역과 인도에서 발흥하거나 전파된 종교들이 동쪽으로 전파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앙 아시아에서의 모든 종교는 바로 이 길들을 따라 열정적인 순회 전도자, 구도자, 그리고 상인들에 의해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흘러 들어왔다.  불교도 인도에서 중국까지 흘러들어오는 과정에서 실크로드를 통해서 전파되었다.  네스토리안들이 거쳐간 이 길을 따라 이슬람교의 순회 전도자인 수피들에 의해 이슬람교도 확산되어 갔다.  특히 이슬람은 장거리 상인들의 대단위 무역에 이용되었던 바닷길을 이용하면서 이미 불교가 거쳐갔던 동남 아시아 해안 지역에 광범위하게 세력을 뻗쳐갈 수 있었다.  교통의 요충지를 어느 종교가 장악하는가가 중앙 아시아 일대에서 어느 종교가 영향력을 미치는가와 상관 관계가 있었다.  

아시아의 동부 지역에서 네스토리안이 전성기를 맞았던 몽골 제국 시기는 세계가 다시 거대 제국하에 편입되었던 시점이다.  이 시기에 역전제도를 통해서 전 세계가 하나의 정치권으로 통합되게 되었다.  몽골이 이룩한 교통 통신망을 통해서 수많은 종교가 제국의 수도로 모여들었다.  카톨릭 수도사들도 이 길을 따라서 제국을 여행했다.  

비단길에 비해서 초원길은 별로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비단길보다 훨씬 앞선다.  초원길을 이용했던 유목민들은 역사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던 반면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개척하고 이용하기 시작한 비단길에 대해 풍부한 역사 기록을 남겼다.  그 때문에 일반에게는 비단길이 동서 교역로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비단길의 실체를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 과장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비단길은 중국 서북부 신강성 일대의 타림 분지를 동과 서로 잇는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하는 선이다.  이 길은 돌과 모래로 된 황막한 사막을 통과하는 길이기 때문에 물이 있는 오아시스 지역을 연결해서만 지날 수 있다.  때로는 물없는 지역을 몇 주 동안 거쳐가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위험할 뿐 아니라 많은 물자를 수송하기에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 길의 주요 이용자는 소규모의 귀중품 위주의 무역을 하는 카라반들이었다.    

반면 초원길은 역사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고고학 발굴 성과 등을 통해서 최근 학자들 사이에 주목받기 시작한 길이다.  만주에서부터 몽골리아, 카작스탄을 거쳐서 남부 러시아 초원과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스텝이라고 불리는 푸른 초원 지대가 거대한 띠처럼 동서를 관통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이동하면서 목축을 하던 유목민들이 장악하고 있던 곳이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북쪽 지역의 유목민을 야만인으로 보고 그 땅은 위험하고 추운 어두움의 땅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실제 이 길은 동서 문명을 연결하는 하이웨이였다.  이 초원 지대를 이용하면 빠르면 육개월 안에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유목민 대부분은 손님이나 외부인에게 관대했기 때문에 중간에 물과 식량 공급이 용이했을 것이다.  유목 지배자와 좋은 관계를 맺은 교역상들은 이 길을 통해 대규모로 물자를 유통시킬 수 있었다.    

모 선교단체에서 동서를 연결하는 “길”이라는 개념에 주목해서 실크로드 행진을 주창한 적이 있었다.  현재 한국 교회나 선교 단체의 중국 서북 지역 선교나 중앙 아시아 선교는 “실크로드”라는 개념으로 접근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실크로드라는 용어가 가지는 개념적 문제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비단 길이라는 개념으로 중국 서북 지역을 축으로 하는 중앙 아시아 일대를 지칭하는 경우 몇 가지 개념적인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예를 들면 그 지역을 “하나의 길”로 개념화할 경우, 그 길 연변에 위치한 지역들을 단지 거쳐가는 과정이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쉽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실크로드학의 경우 그러한 폐해가 두드러진다.  실크로드 연구자들은 일본과 서쪽을 연결하는 하나의 점과 선으로써 중앙 아시아 일대를 보았기 때문에 관계에 촛점을 맞추었던 반면 그 지역 주민들의 삶 그 자체에 대해서 깊이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여되었다.  이러한 예는 이 지역 선교를 추진하는 한국 교회에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교회는 점과 선으로써 그 지역을 바라보기 보다는 면으로써 그 지역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의 거쳐가야 할 과정으로써가 아닌 목적으로써 그 지역을 품어야 한다.  지나가야 할 곳으로써의 선교 동원에 필요한 대상이라는 차원에서의 접근하기 보다는 그 지역 주민의 삶에 촛점을 더 두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맞이하고 섬기는 자세가 더 요구된다.

일본에서의 실크로드학이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이 학문이 일본에서의 대중적 환상에 영합했던 것이다.  일본의 서점의 한쪽 코너를 전부 실크로드와 관계된 책들로 도배할 정도로 이 분야가 급성장한데에는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륙 진출에 대한 환상에 호소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이다.  19세기 20세기의 열강들이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진출했던 이유도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환상이 대중들을 자극했던 것과 관계가 있다.  이국적인 지역에 대한 환상은 지배욕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우리가 이 지역을 선교하려고 함에 있어서 반도국가로써 이 지역에 대해 가지는 낭만적인 환상이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점차 성장해 가면서 아시아 지역 경제에 영향력 있는 동반자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이 지역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교계의 선교적 지향이 맞물린다면 우리의 선교적 열정이 지배 의지나 정복 욕구와 오버랩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선교 동원 방식에 이러한 식으로 교인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쪽으로 진행되지는 않는지 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길은 중요한 개념어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길은 인생의 선택과 삶의 과정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의 좁은 길과 넓은 길의 비유는 바로 이것의 예가 된다.  아울러 사명과 사역을 의미하는 “주의 길”이라고 하는 개념도 중요하다.  “대로를 수축”하라든가 “광야에 길”을 내라든가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등의 표현은 그런 사역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셨던 시기는 절묘하게도 로마에 의해 로마 지배 영역내에 도로가 건설되었던 시기였다.  사도들과 바울은 그 길을 따라 전도 여행을 진행해 갔다.  도로 교통의 요충지와 주요 항구 도시를 따라서 초기 교회가 개척되어 갔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 19)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는 교통의 요지에 몇 군데 몇 가정이 모이는 교회가 개척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이 지역이 복음을 편만하게 하는 전진기지가 될 것임을 내다 보았던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들은 아직 충분히 개념화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슬람권과 불교권을 넘어서 이스라엘까지 복음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을 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개념화해서 설명하자면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동서 교역 루트를 따라서 네스토리안이 지나왔던 길을 역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복음을 전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근대 시기 이 길을 따라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복음이 전해져 왔었다면 이제는 복음이 이미 지나왔던 이 길들을 거슬러 동쪽에서부터 다시 서쪽으로 복음의 방향을 트는 것이다.  (많은 수의 목회자와 선교 단체가 복음이 서쪽을 향해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되어 왔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전호에서 언급했듯이 동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Back to Jerusalem” 운동도 선교를 이제 네스토리안이 지나왔던 길과 역방향으로 진행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필자가 가진 선교 역사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다시 세 가지 루트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진시켜 이스라엘까지 가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운동과 네스토리안의 길을 거슬러 간다는 생각은 공통분모를 가진다.  (굳이 다른 점을 들자면 필자는 이 땅을 “회복”의 차원에서 접근해 가야 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서는 전호 참조.)

현재 인구 밀도가 농경지역처럼 높지 않은 중앙 아시아 지역 선교에 있어서 도시 거점 선교 전략은 많은 이점을 가진다.  교통 요지에 든든한 거점이 형성될 때 시간과 자원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결집시킬 수 있다. 현재 필자는 몽골에서 사역하면서 몽골의 기차역 중심의 교회 설립에 진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생태환경적 특징에 착안했기 때문이다.  (사역 내용에 대해서는 www.nomadlove.org 참조.)

필자는 복음화가 충분히 진전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외부의 오지 개척보다는 길을 따라 거점을 확보하고 오지에도 인근 몇 개의 교회가 연합할 수 있도록 묶어주는 것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는 도시 복음화와 거점 확보가 지방 사역 보다 우선한다.  앞으로 다루겠지만 네스토리안들의 본토로부터의 고립이 지나친 토착화 내지는 정체성 상실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슬람권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서는 중앙 아시아 몇몇 주요 도시를 충분히 거점화할 필요가 있다. 몽골의 울란바아타르라든가 중국 신강성의 성도인 우루무치 등의 지역은 인구로 보나 경제적인 중요성으로 보나 앞으로 동북 아시아 지역의 교회가 이슬람권을 파고들어가고 지방으로 복음을 진전시키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몽골에 선교사가 많이 파송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율적으로 너무 많다는 단순한 수적 지적에 필자가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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