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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레이트 부족 10만여명이 세례를 받은지 8세기가 지난 시점인 19세기 말부터 스칸디나비아 지역으로부터 개신교 선교사들이 울란 바아타르 (그 당시 이름은 우르가) 지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1896년에 울란바아타르에 들어와 길거리에서 전도활동을 했던 노르웨이 출신인 올라 내스테가르드(Ola Naestegard)와 관련해서 다음의 이야기가 전한다.  

내스테가르드는 사람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받아 하늘에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때 군중 가운데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러나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에 죽은 사람들 모두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들 모두는 잃어버린 것이오?”  내스테가르드는 생각없이 대답했다.  “예 물론입니다.”  그러자 몽골 승려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 분은 너무나 잔인한 신이오.  결국 당신이 이곳에 늦게 온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 다음에 내스테가르드는 주의를 기울여 그리스도에 대해서 듣지 못했던 사람도 그들이 경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고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했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러한 인정은 다른 사제를 촉발시켰다.  그 사제는 크게 외쳤다.  “그러면 당신은 왜 여기에 와 있는거요?  우리는 당신과 당신의 종교가 굳이 필요없을 텐데도 말이요?”

만약 그 불쌍한 노르웨이 출신의 선교사가 이미 울란바아타르를 중심으로 하는 몽골 중앙부에만 10만여명의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많은 선교사들이 그들의 조상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마르코 폴로에 따르면 중앙 아시아와 몽골 고원 일대에 적어도 세 명에서 네 명 중 한 명꼴로 기독교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계속되는 라마교 승려들의 공세를 쉽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실은 라마 불교가 몽골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라마 불교야말로 외래 종교이자 후발 종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활발했던 네스토리우스 교파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많은 신학교에서 가르쳐 왔던 내용들은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이 가졌던 자세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즉 쉽게 현실과 타협하고 정치 지도자에게 붙어서 선교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네스토리우스교를 이단시하는 틀 속에서 그들의 자세에서 문제점을 찾으려 했던 것인 만큼 연구 시각 자체에 문제를 가진다고 하겠다.  어느 정도가 현실과의 타협인지가 기준이 불분명하다.  또한 각 지역마다 다른 전통과 다른 전략을 가지고 광범위한 지역에 확산되어 있었던 네스토리안 교구들을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네스토리안들이 급격히 쇠퇴하게 된데에는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환경적, 정치적, 사회적 요소들이 작용했다.  첫번째는 돌발적인 흑사병의 확산이다.  이 흑사병의 확산은 몽골의 세계 정복과 관련이 깊다는 설명이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래 흑사병의 균은 중국의 운남성과 동남아 북부 일부 지역에 서식하고 있었는데 몽골군이 이 지역을 공격한 후 초원으로 돌아가는 행렬에 이 균이 묻어서 몽골 초원지대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몽골의 쥐나 모르모트 등 지하에 서식하는 설치류들 사이에 퍼져있던 균들이 몽골 군대나 상인들과 접촉하면서 균이 주기적으로 중앙 아시아,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  네스토리안의 묘비를 분석해 보면 많은 네스토리안들이 흑사병으로 죽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흑사병은 네스토리안만이 아닌 모든 중앙 아시아인들을 몰살시켰다.  따라서 이것만으로 네스토리안의 쇠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두번째 이유는 급작스러운 급진적 이슬람의 확산이다.  몽골 제국의 후예 중 러시아, 킾챡 지역에 있던 조치의 가문과 이란, 중동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훌레구 가문은 이슬람을 국교로 받아들인다.  이 무렵 확산되기 시작한 이슬람은 급진적 성향을 띠는 것으로 기존의 이슬람과는 달랐다.  그 이전에는 이슬람권 내에서도 유대교나 기독교를 자기들의 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이교도들에게도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을 지나고 몽골 침입을 겪고난 무렵의 이슬람은 기독교에 대해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중동에서 몽골을 계승한 티무르는 제국을 건설할 당시 자신의 정권의 이슬람권에서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수의 네스토리안들을 포함한 중동 지역의 기독교도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바그다드에 선교 본부를 두고 있던 네스토리우스교 총주교는 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족이 거주하는 산악지대인 모술 일대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선교 본부와 동방 지역의 여타 네스토리우스 주교구와의 통신이 단절되게 되고 더 이상의 선교사나 사제들의 파견이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 두가지 이유가 네스토리안의 쇠퇴를 초래한 이유는 세번째 이유 때문이다.  네스토리우스 교단은 시리아어에 기초해서 예배를 집례하고 신앙을 전수해 왔다.  마치 라틴어에 의해 천주교 미사가 드려지고 아랍어로 이슬람의 신학과 의례가 유지되어 왔던 것과 같다.  중세 시기에는 “성스러운” 언어로만 종교 교육과 의례가 진행되어 왔다.  천주교회가 마틴 루터의 가장 큰 죄목으로 지적한 것은 루터의 종교 개혁 그 자체보다는 그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다는 것이었다.  중세에는 말씀 자체가 대다수 교육받지 못한 대중에게는 접근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영적 생활은 말씀 그 자체보다는 전통과 의례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교회의 존속과 성장은 해당의 “성스러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던 사제 집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특히 동방에서의 네스토리우스 교단의 경우 시리아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제 그룹이 이란, 이라크, 또는 시리아 지역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보내지지 않으면 교회의 유지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흑사병에 의해 사제들이 몰살되고 또 이슬람의 성장으로 인해 선교 본국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자 자연히 네스토리우스 교회는 성장을 멈추고 급격히 쇠퇴할 수 밖에 없었다.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의 동방 선교가 서서히 막을 내릴 무렵부터 유럽의 천주교가 예수회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전도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개신교의 등장을 통해 새롭게 기독교가 유럽과 신대륙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신 것이다.  주목할 사실은 이 시기부터 잠자던 유럽이 눈을 뜨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바다를 통한 무역이 본격화되면서 무역의 중심도 인도와 중국에서부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등 유럽 국가 중심으로 재편되게 된다.  15세기초만 하더라도 어느 역사학자의 표현을 빌면 다람쥐가 프랑스의 파리에서부터 러시아의 모스크바까지 나무 위로 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발을 땅에 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할 만큼 유럽은 개발되지 못했고 또 인구도 적었다.  하지만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당시 인구 수십만의 대도시를 여럿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경우 이미 12세기 무렵 인구 백만을 넘는 대도시를 가지고 있었고 기술 선진국이었다.  네스토리우스 교가 동방에서 쇠퇴하기 시작할 무렵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활력을 잃어갔고 반면 개신교의 성장과 함께 유럽에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탐험 정신, 계몽주의 등이 싹터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몽골에서의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의 선교 전략과 조직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현대 몽골 선교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성호

2005.09.16 13:41:12

선교사님의 글들을 읽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놀라운 은혜가 몽골에 임하였음을 느꼈습니다. 그 중심의 도구로 사용되시는 선교사님과 이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더욱 넘치리라 확신합니다.
네스토리우스 교도에 대한 글들을 관심있게 읽으면서 제가 왜 동방으로는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나 의아하게 생각됐던 의문점이 해소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동방으로 전달된 복음과 관련된 역사와 사실을 자주 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당하시는 선교사님을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추신: 네스토리우스교도에 대한 내용 중 3번이 리스트에 없네요).

이용규

2005.09.20 10:47:51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스토리우스 교도에 대한 세번째 글은 몽골에서 제 노트북 컴퓨터가 도난당하면서 없어졌습니다. 그 때 쓴 글은 다시 복원되지 않네요. 한국의 GO 선교회의 GO 저널에 이 글이 연재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 저널에는 세번째 글이 실려있을 것입니다. 저널을 보내주시기가 쉽지 않은지 글이 도착하지 않아서 복원되지 못하고 있답니다.

김영수

2007.07.09 14:39:23

아 그랬군요!! 리스트에서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있어야죠^^작년에 쓴글을 이제야 뎃글을 답니다. 그냥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요~
참 신기하고 놀랍지 않나요~ 하나님이 관심 갖은 대륙에서 문명과 모든 것이 발전하고 있다. 개인의 역사도 이와 같겠죠~!! 흥미롭게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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