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7편에 보면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분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도 거듭 천명되고 있는 내용이다. 필자는 저서 “내려놓음”의 서문에서 온유한 자란 자신의 삶의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기를 자원하는 삶의 모습을 가진 자로 설명한 바 있다.
즉 말이 강한 힘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자기 원하는 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재갈 매여져서 누군가의 통제 안으로 들어가는 상태가 온유한 자의 삶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러한 온유한 자가 땅을 유업으로 얻는다고 설명한다.
시편 37편에 묘사되는 온유한 자는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 자다. 즉 악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는 모습의 사람이다.
필자는 12월 중순에 언어과정을 졸업하고 인도네시아 현지의 기독 교육 기관들을 답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답사 기회를 통해서 자바 섬에서 자카르타 다음으로 큰 도시인 수라바야라는 지역의 기독 교육기관을 방문하고 그들의 사역 방식과 역사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 브로모 화산 지대에 위치한 베다니 기독 학교 세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베다니 기독 학교가 위치한 브로모 화산은 인도네시아에서 발리 섬과 함께 최대의 관광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브로모 화산은 지금도 유황 냄새가 가득한 증기를 내뿜는 거대한 활화산이다.
이 지역의 원주민은 뜽가르 족이라 불리며 대부분이 힌두족이다. 힌두교에 기초한 마자빠히드 왕조가 이슬람 왕조에 무너지면서 도망하던 힌두교도 일부가 이 고산 지대에 와서 정착하며 마을을 이룬 것이 뜽가르 족의 시초가 되었다.
이 지역의 아래 마을에는 강한 무슬림 공동체가 있어서 산 위쪽의 뜽가르 족 힌두 마을을 조금씩 잠식해 가고 있다.
그 지역에 세 개의 기독 학교가 세워져 있었다. 이 학교를 세운 설립자는 처음부터 전도 목적으로 이 학교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학교는 수 년 전 재정위기를 맞아 5개월 간 교직원 월급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문을 닫기 직전에 말랑이라는 인근 도시에서 서점을 경영하던 중국계 기독교인 사업가가 그 소식을 듣고 몇몇 독지가들과 함께 이 학교를 인수해서 경영하고 있다.
이 사업가가 학교를 인수하게 된 배경에는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양육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데 기인한다고 했다.
이 학교를 통해서 이 마을에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다니는 기간 동안 교사들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마을에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졌다.
그 결과 이 마을에 3-5퍼센트 정도되는 교인들이 있다고 들었다. 필자가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가 마침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연합 행사가 열리고 있던 때였다.
인근 마을의 교회에서도 함께 모여서 복음을 담은 연극과 찬양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참석한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성탄 준비 행사를 하던 시기를 생각나게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 마을의 무슬림과 힌두 대표인사들이 초대받아서 그 행사를 관람하고 인사말을 했다.
이 마을에서 교회는 소수자로서 전체 마을과 화합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세 학교 중 한 곳의 작은 교무실 벽에 붙어있던 표어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불평하지 않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시간: 12:00-00.00
실은 외부인이 객관적으로 볼 때 이 학교는 교사 입장에서 불평거리가 많은 학교였다. 월급도 제 때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 교실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책상과 의자는 부서져 있었고 칠판도 변변한 것이 없었다. 교실 지붕에서는 빗물이 새어 바닥을 적시며 흘렀다. 세워진 지는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자립이 요원한 상황이었다.
교사들의 교무실도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학교는 무슬림 정부 공무원들의 다양한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지방 정부로부터 단 한 푼도 지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또한 국립 학교나 이슬람 종교 학교에서 이 학교로 학교를 옮길 경우 학업증명서를 학생들에게 발급해 주지 않으려 한다. 기독교 학교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한 처사이다.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교사들은 서로 불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헌신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또는 졸업 후에라도 예수님을 만났다.
교사들은 동네의 졸업생들의 신앙 지도도 감당하고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도 봉사하며 학교가 마을의 기독교인들에게 중심적인 기관의 역할을 하도록 돕고 있다.
이 일을 사명으로 여기며 자신의 평생을 바친 선생님들은 이 학교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주민의 대다수가 힌두교도 또는 이슬람교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들이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고자 했다. 그 이유는 이 학교의 교육의 질이 다른 시설 좋은 공립학교보다도 높기 때문이었다.
학교 교무실에는 학생들이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에서 타온 트로피가 가득 쌓여 있었다. 보통은 이 학교 아이들이 예체능 또는 일반 학업 경시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휩쓸어서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지역 대표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비록 학교 설비나 시설은 미비하기 그지 없지만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지도로 인해 학생들이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마을에서 종교가 다를지언정 그 학교에 아이들을 넣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선생님들의 교육 열의가 학교를 특별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학교 사역에 감동한 한국의 창원 한빛 교회에서 지원을 해서 학교 건물을 하나 지어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교 관계자와 선생님들은 한국의 교회가 학교를 지원해 주었다며 감사와 자긍심을 담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이 베다니 기독 학교 사역을 보면서 예전의 몽골 국제 대학교(MIU) 시절 사역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몽골 국제 대학교는 신흥 학교로 시설도 열악했고 자랑으로 내세울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생들이 MIU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속으로 “너희가 정말 좋은 대학을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나는 점차적으로 그 학생들의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좋다는 하버드 대학에서도 가지지 못한 것을 MIU 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희생의 감수하고 학생들을 섬기고자 사례도 받지 않고 와서 가르치는 교수진들이다. 이런 교수들을 가진 학교야말로 가장 부유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만드는 학교 문화는 그 어떤 학교에서도 가질 수 없는 끈끈함과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월요일이 되면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학교는 좋은 문화, 좋은 학업 분위기, 그리고 열정있고 따뜻한 선생님이 함께 하는 학교다.
인도네시아에서 대학 사역을 준비하면서 필자가 함께 하는 팀이 섬길 학교가 하버드 대학보다 좋은 대학이 될 수 있는 비결은 우리만이 가진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사역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장점이 극대화될 때 우리가 가진 약점이 중요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필자와 함께 하는 사역팀은 작지만 강한 학교를 지향한다. 이런 종류의 개척 사역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을 탓하기보다는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다니 기독 학교의 교무실에 적혀 있는 “불평하지 말자”라는 표어는 시사하는 부분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사역 가운데 수없이 쏟아지는 문제를 보게 되면 우리는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목표는 문제 해결이 아니다. 문제가 없는 평형 상태가 우리의 궁극적인 골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그것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두어야 한다. 그것에 주목할 때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이 되곤 한다. 좋은 것과 잘 해 온 것에 집중할 때 긍정의 에너지가 조직과 기관에 흘러가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올 한 해에도 이런 긍정의 에너지가 우리 가운데 가득 흘러 넘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