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 노마드 - 인도네시아 이용규 선교사 웹사이트입니다. ::
선교지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선교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몽골 국제 대학교를 섬기면서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 나는 늘 나의 무능력함과 맞부닥치게 된다.
그제서야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온전히 그 문제를 올려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

이러한 과정의 연속 속에서 나는 선교가 온전히 하나님의 영역임을 체험적으로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선교의 현장에서 종종 이것을 잊어버리고 혼자 어떤 프로그램을 짜고 그것을 돌리느라고 분주한 경우가 많다. 결국 그렇게 쌓아놓은 업적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선교사 자신의 것이 되고 선교사는 점점 하나님과는 관계 없는 일로 분주해지기 쉽다.

선교사는 사역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동역해 주시기를 끊임없이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선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보다는 인간의 노력을 통한 변화를 강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선교 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의 중요성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선교 동원을 담당하는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나 설교를 보게 되면 아무래도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강조하고 현장에서의 물질과 헌신의 필요를 전달하면서 개교회나 개인들이 그 필요에 대해 반응하도록 돕는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선교에 있어서 우리의 반응과 노력이 차지하는 부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이 없이도 얼마든지 일을 잘 하실 수가 있다.  전에 필자가 예를 들었듯이 중국이 공산화되고 선교사들이 쫒겨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들의 도움없이 교회의 신앙을 유지시키셨을 뿐 아니라 더 단단하게 하셨다.  그리고 1950년대에 50만이었던 기독교 인구를 반세기만에 2천 5백만에 이르는 숫자로 성장시키셨다.

또 한 예로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들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란에 약 십만에 추산되는 지하교회 교인들을 불러 모으셨다. 이란 지역은 선교사가 가서 사역하기 가장 어려운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선교사들이 일년에 한 두 명 신자를 얻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하여 당신이 택하신 무슬림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이키시는 것이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란에서 직접 들은 것은 다수의 무슬림들이 위성 방송을 통해서 이란어 기독교 방송을 접하고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게 되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병을 고치거나 기적을 체험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대학 시절 이성적인 사람이 신앙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똑똑하고 성경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더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고 나는 절망감과 상실감에 빠졌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구원을 놓고 오랜 동안 기도해 왔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은 원래 원불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원불교 경전을 일본어로 번역한 원로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집안인 장손인 나를 어려서부터 절에 데리고 다니시고 불경을 외우게 하시곤 했다. 우리 집안에서 기독교인은 어머니 한 분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앙을 가지신 어머니께서 덜컥 믿지 않는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가셔서 당하셔야 했던 고통이 매우 컸다. 주일 날 몰래 교회를 다녀오는 것 자체가 힘든 싸움이었다. 어머니는 그 가운데서 자녀들을 모두 기독교인으로 키워내셨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 나는 집안의 각종 압력과 회유를 이겨내는 한편 믿지 않는 가족의 일원을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기도했다. 당시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였고 할머니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를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고 나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장손인 나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내가 누군지를 헷갈려 하실 정도였다.

그러던 할머니께서 내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초기에 성령을 받으셨다. 그리고는 바뀌신 것이었다. 그것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이성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면 구원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이러한 이해 없이는 믿음이 생겨날 수 없을 것이라고 간주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께서 자진해서 교회를 찾아가셨고 빠지지 않고 교회를 다니신다는 말을 전해듣고 궁금했다. 혹시 생각이 혼미해지신 후에 마음에 잠시 변화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에 나타난 변화에 대해 듣고 난 후 나는 할머니가 진실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께서 찬송을 부르셨는데 요즘 잘 불리지 않는 찬송이어서 어머니는 할머니께서 그냥 노래를 지어서 부르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가사를 찾아보니 찬송가 책에 들어있는 찬양이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초등학교 때 잠시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 들었던 찬송이었지 않을까 싶었다. 아마 성령님께서 기억나게 해 주셨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어머니께서 교회 일로 저녁 늦게 귀가하셨다. 집에 홀로 계신 할머니를 생각하고 급하게 들어가서 할머니를 찾았다. 혼자 외롭거나 두려우셨겠다고 말씀을 건넸더니 예전 같으면 혼자 힘들었고 배고팠다고 하셨을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예수 선생하고 같이 있는데 뭐가 무섭겠니?  나는 예수 선생하고 같이 있어서 편안하고 기쁘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서 영과 교통하시는 것을 나는 그 때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믿음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바로 이 이성이 관장하는 영역 너머에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즉 뇌가 기능하지 못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어도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이해하고 삶 가운데 받아들이며 우리의 삶과 행동에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서구 교회들은 이성과 논리에 신앙을 가두어 두려고 하면서 결국 신앙을 잃어가고 있다. 서구 신학의 방법론이 더 정교화되어 가는 가운데 오히려 교회 안에서 신앙은 제도라는 틀 속에 갇히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에 남미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신학적으로 자유롭고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독립 교단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필자가 지난 9월에 뉴욕 리디머 (구속자) 교회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에녹 아데보예 목사가 전한 바로는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교회는 교회 건물이 1마일 정도로 퍼져 있으며 출석 교인이 백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교회에서 특별 금식 성회가 열리면 지방에서도 성도들이 몰려들어 삼백만 명이 금식 집회를 한다고 들었다. 그 교회에서는 실제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가 한 번은 집회에서 정부 고위 관료의 죽은 딸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녀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니까 관을 집어 던졌다고 한다. 결국 그 관에서 그녀가 나와서 자기는 천국으로 가야하고 천사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다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성찬 예식 가운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한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가진 나라지만 4천만명의 기독교 인구를 가지고 있다. 몇 년 전에 무슬림들이 폭동을 일으켜 기독교 마을을 습격하는 일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일로 인도네시아 기독교 인들이 외국으로 나가서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인도네시아인 교회들이 개척되게 되었고 그들이 다시 본국에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그들은 빠른 시간 내에 한국보다 더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20만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는데 교회 모임을 위해서 큰 스타디움 건물을 지었고 그것을 자신들의 소유로 하지 않고 교단에 헌정했다고 한다. 이 교회는 24시간 기도와 예배가 끊어지지 않는데 일단의 그룹들은 유럽과 미국의 교회 부흥을 위해 24시간 기도와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어느 교회도 하지 않는 일들을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교회들의 부흥에 대해서 그 비결을 묻는 서구 지도자들에게 인도네시아 교계 지도자인 이만 산토소는 자신들을 카피하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들은 실수 투성이였고 결국 기도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했고 그 분이 이 일들을 이루어 가셨다고 했다.

실은 이것이 핵심이고 서구 교회들과 선교사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해서 다음 호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379 타일러에서 보내는 편지 3 이용규 2009-11-06 33686
378 타일러에서 보내는 편지 2 이용규 2009-11-06 34940
377 텍사스 타일러에서 보내는 편지 1 이용규 2009-11-05 34642
376 복음의 토착화와 상황화의 예 4 이용규 2009-11-05 26432
»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교 1 이용규 2009-11-05 34101
374 MIU가 비전을 이룰 수 있는가? (권오문 총장 칼럼에서) 이용규 2009-07-06 33586
373 현재 몽골에서의 종교 감사와 관련해서 이용규 2009-07-06 31262
372 토착화와 상황화 3: 홍콩 도풍산의 연꽃 위의 십자가 이용규 2009-06-28 34642
371 토착화와 상황화 2 이용규 2009-06-28 32189
370 몽골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이용규 2009-06-09 33852
369 복음의 토착화와 상황화의 예 1 이용규 2009-06-09 36925
368 세째 아이 [7] 이용규 2009-05-26 29772
367 역사에서 배우는 선교: 네비우스 선교 정책과 현 한국 선교 이용규 2009-03-21 36049
366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배워가는 하나님 사랑 이용규 2009-03-21 39752
365 어느 사역자가 남긴 편지 이용규 2009-02-24 31371
364 흩으심의 선교 [1] 이용규 2009-02-16 28856
363 이민 교회의 선교 잠재력 [2] 이용규 2009-02-16 26578
362 다시 몽골로 향하며 [1] 이용규 2009-02-16 31392
361 감사.... 그리고 내년 초 집회 일정 이용규 2008-12-21 29361
360 하나님의 지갑 이용규 2008-11-28 28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