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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회의 전통에서 현대 교회가 배울 점 2

동방 교회 선교 전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두번째는 오랜 전문인 선교 전통이다.  동방 교회의 아시아 전역에 걸친 선교 방식을 보면 자급자족형 선교, 그리고 전문 직업인 선교이다.  만인사제설에 의거해 세워진 개신 교회조차 평신도 선교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인정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반면 동방 교회는 천수백년 전부터 전문인 선교를 시작했다.  

평신도 선교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네스토리안 교단에서 사제 독신제를 끊은 것과 관계가 깊다. 페르시아 지역 위치하며 선교하던 동방 교회는 당시 페르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종교인 마니교의 결혼 부정에 대해 선을 긋고 차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하여 비잔틴 제국 내의 카톨릭 전통과는 달리 사제 독신제를 끊고 사제가 결혼하여 가정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 점 역시 동방 교회가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적 전통과 비슷한 점 중 하나이다.

카톨릭의 사제 독신주의의 시초는 본래 동 시리아 교회의 금욕주의 전통에서 온 것이다. 동 시리아 지역의 수도원 중심의 공동 신앙 생활의 전통은 사제 독신제를 채택하게 되는데 가족이 없으면 공동 재산이 분할되지 않고 존속됨으로 해서 공동 생활을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도원 중심의 금욕주의 전통은 페르시아 지역의 교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특정 교단의 교리가 강조된 배경에는 그 교단이 배경을 둔 시대적 상황이나 지역적 문화와 맞물려 있음을 보게 된다.
어느 한 지역적 전통을 가지고 보편적 가치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타문화권 선교에 많은 제약을 가져온다.

페르시아 지역의 동방 교회는 시리아 지역의 사제 중심적, 수도원 중심적 교권주의와는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사제 독신제를 부정함으로 해서 사제와 평신도와의 차별성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상인 출신의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이 선교사로써 인정받는 것이 용이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방교단은 사마천의 사기에 월지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흉노족을 피해 인도 북부로 내려와 쿠샨 왕조를 열었던 헵탈리트 족에게 일찍부터 선교사를 파송했다.
기록에 따르면 4명의 사제가 7년간 2명의 전문인 사역자가 30년간 헵탈리트 인들을 상대로 사역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전문인 선교사가 더 장기로 헌신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제들은 주어진 임기 동안만 사역하고 그 기간을 마치면 본국으로 돌아갔던 반면 전문인 사역자들은 그 장소에서 생업을 가지고 살면서 전도하기 때문이다.
전문인 사역자들은 선교와 목회를 동일시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선교 대상과 삶을 공유하면서 삶 속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보았을 것이다.

소그드 상인을 비롯 국제 상인들로 구성된 동방 교회의 선교사들은 실크로드를 따라서 교역을 하면서 동방에서 비즈니스 선교를 진행했다. 전문인 선교사들은 자신의 전문 기술을 가지고 선교지에 들어가서 선교 대상자들의 생활에서의 필요를 채워주고 생활 속에서의 접촉점을 찾아준다.
이들은 교역로를 따라 상업이 발달한 거점 도시에 근거를 마련해서 선교 센터를 건설했다.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서 오아시스 주변의 마을에서 농경을 할 수 있도록 물길을 찾아주거나 우물을 파주기도 하고 농경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즉 경제 발전을 이끌어 준 것이다.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신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육 선교이다. 또 의사 출신자들은 의학 지식을 이용해서 환자를 치료해 주기도 했다.

특별히 의료 선교의 중앙 아시아 지역 선교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컸다. 라마 불교가 몽골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파되어서 결국 몽골에서의 국교의 자리를 점하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티벳 승려들의 의료 선교의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당시 발달된 티벳 의술을 가지고 들어간 티벳 승려들이 무당들 보다 병을 잘 고칠 수 있었기 때문에 티벳 불교가 샤머니즘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 해서 몽골 유목민들의 신뢰를 얻었던 것이다.
이슬람이 16-17세기 이후 중앙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에 급속히 확산된 배경에도 수피라고 불리는 이슬람 성자들이 이 지역에서 선행을 배풀고 병자들을 고쳐줌으로 해서 그 지역의 토속 신앙보다 우위에 선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

전문인 선교가 가지는 장점은 역사적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수당 제국 시기에 중국에 서 활동하던 동방 교회 선교사들은 주로 수도원 전통 중심의 시리아적 배경을 가진 사제 그룹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수도원을 건설하고 세속과는 격리되어 그 속에서 수행을 하며 소수의 사제 그룹을 양성하는 사역에 치중했다. 소수 정예를 중심으로 언어를 가르치고 경전을 연구하고 수행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 결과, 일반 중국인들은 이 외래 선교사들을 불교의 승려들과 동일시했고 그들의 수도원을 절의 일종이라고 보았다. 후에 당나라 무종의 연간에 불교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견제하며 또 사원의 경제력을 국가 재정에 흡수하기 위해 폐불 운동이 일면서 사원들에 정부로부터의 철퇴가 가해지게 된다.
그 시기에 동방 교회 수도원도 불교의 일파로 간주되어 탄압받고 자취를 감추고 만다.

반면 몽골과 중앙 아시아 일대에 들어온 동방 교회 전통은 페르시아적 전통이었다. 상인 출신 전문인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상으로 파고들어 갔다.
유목민들과 동거하면서 삶의 정황 속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랬기에 중국에서의 경우와는 달리 북방 유목 지역에서는 동방 교회의 전통이 거의 천년 가까이 지속될 수 있었다.

동방 교회의 상인 선교사들이 가지는 장점은 스스로가 직업을 통해서 생활과 사역의 경제적 필요를 충당했다는데 있다. 당시는 외부 송금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현지에서 필요한 물자를 확보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생활인으로써의 삶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의 제삼 세계 선교에 있어서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외부에서부터 들어오기 때문에 가난한 현지 교인들에게는 선교사가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들로 비친다는 것이다.
교회에 나오는 주된 이유가 물질적인 혹인 기회상의 혜택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외부의 지원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경우, 신앙의 현지화 내지는 교회 자립에 있어서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또 현지 교회가 선교사의 선교 본국의 선교 정책이나 전통에 지나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 선교가 제국주의적인 지향과 맞물려 있었다고 하는 비판을 받게 된 것도 위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의 선교에 있어서 전문인, 혹 평신도 선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지구상의 대다수의 선교 대상 국가가 선교사 비자를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교사의 입국을 거부하고 선교를 탄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회자 신분을 숨기지 않고서는 선교지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외국의 경우 신학 과정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안수받지 않고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많이 있다. 전문인 신분으로 현지에 들어가서 기반을 닦으며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점차적으로 교회로까지 연결하는 것은 효율적인 선교 방법이다.

선교지에 있다 보면 목회자 선교사와 전문인 선교사 사이에 불필요한 거리감을 가지는 경우를 본다. 둘 다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가면 좋건만 경쟁 구도를 가지는 경우다.
한국 교회의 선교사 후원 현황을 보면 압도적으로 목회자 선교사를 선호한다. 보통의 경우 자신의 교단 출신, 신학교 출신의 목회자를 지원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목회자 선교사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선교지에서의 교회 개척 사역을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사역하는 어느 목회자 선교사 한 분이 전문인 선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한국 돌아가도 최소한 어느 교회 부목회자로 갈 수 있겠지. 당신들은 여기서 있는동안은 사역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이곳에서 돌아가서 무슨 대안이 있는가?”

실은 전문인 선교사들의 경우 목회자 선교사들에 비해 더 열악한 환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름의 애로점이 있어 보인다. 한국 교회의 인식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평신도 선교사들은 목회자 선교사에 비해 보조적인 존재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안식년으로 쉬는 기간 교회가 후원하거나 설교를 부탁하는 경우가 아무래도 목회자 선교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많이 제약되기 마련이다.
이미 전문 직종을 떠나 선교지로 들어온 지 오래된 상황에 있다 보니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대책이 준비되지 못한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이러한 데서 오는 부담 때문인지 한국 출신의 전문인 선교사들은 안식년에 나가서 신학교로 들어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외국 선교사 중에는 우려를 표하면서 한국 선교가 평신도 중심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일침을 놓는다.

물론 목회자 선교사가 가지는 고유한 영역이 있고 이 부분은 선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 부분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목회자 선교사와 전문인 선교사가 서로 연합하며 사역을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가진 목회자 중심주의, 교권주의, 그리고 교회 중심의 신앙 생활은 한국 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한국 교회가 가진 문제가 우리가 섬겨야 할 민족들의 교회 가운데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안에 반성과 갱신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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