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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더 쉬워진다.어차피 내가 삶을 이끌어가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한 것임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돌아보건대 내가 유학 초기 힘들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안에 있던 두려움이 컸다.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감,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 결과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불안하게 했던 것이다.  내가 이 부분을 나의 고통 가운데 부르짖음에 대해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당신 앞에 내려놓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가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 예로 교수의 평가를 두려워하는가, 동료나 주위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는가, 상사의 반응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여자 친구의 평가를 걱정하는가?  혹시 그들의 평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의 반응에 대한 관심보다 더 크지는 않는가?  누구의 평가에 관심을 쏟고 두려워하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어디에 어떻게 쏟는지를 결정한다.

일년간의 고통의 시간은 점차적으로 내 삶의 성패에 대해 자유하게 나를 이끌어 갔다.  내가 그동안 추구하던 성공이라는 것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음을 보게 되었고 학문적 또는 사회적 성공에 대해서도 비교적 초연해질 수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해서는 바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이 난관의 길을 극복하는데 훨씬 현명한 길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1997년 여름에 시카고에서 열린 북미 유학생 수련회 (코스타) 기간 마지막 날 내 삶의 이년간의 시간을 드려서 선교사의 삶을 살도록 헌신했다.  일년간의 고난 속에서 내 유학 생활의 성패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한 나로써는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도록 결단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마치 야곱이 형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삼촌 댁으로 피하는 과정에서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하던 심정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야곱은 당시 자기가 외삼촌 댁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하나님이 더 이상 아버지 이삭,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닌 자신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아울러 자신의 소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로써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나도 선교사로 서원할 당시의 마음 밑바닥에는 야곱이 느꼈던 절망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성가대 석에 있었던 아내는 이동원 목사님의 선교 콜링 시간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선교사의 삶을 살 것을 결단해서 앞으로 나가고 있다면 홀로 버티고 남아있는 것이 마음의 짐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앞으로 나가기로 결정했지만 한편 앞으로 나아가는 도중에 남편이 나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는 중이라면 어떻게 하나 갈등 가운데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앞을 향해 걸어나오는 것을 보고 안도하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비록 중동사 연구로 하나님으로부터 비젼을 받았어도 지속적으로 확인받는 작업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께서 나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심을 예시해 주셨다.  

박사과정 2년차를 마칠 무렵의 일이다.  
박사과정에 있어서 가장 큰 고비는 논문 자격 시험이다.  입학 고사가 따로 없이 서류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미국 대학에서는 논문 자격 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을 거르는 작업을 한다.  이 시험에는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두번 다 실패하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논문자격 시험에서 내가 치뤄야 할 첫번째 과목은 제이 외국어였는데 나는 독일어 시험을 선택했다.  미국 학생들에게는 매우 쉽게 느껴지는 시험일 수 있지만 빽빽한 두 페이지에 나열된 독일어를 2시간 안에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것이 내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물론 준비할 시간이 많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다른 중동 지역의 언어 공부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독일어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기출문제로 테스트해 보니 2시간으로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한 페이지 반 밖에 번역할 수 없었는데다가 맞게 번역한 것인지도 자신이 없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 강하게 어필했다.

“하나님!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는 있겠지만, 저에게는 다시 시험을 볼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가 유학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단 한 번만에 붙게 해주세요. 이번에 떨어지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는 줄 알고 짐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험의 결과를 놓고 하나님께 공을 넘기고 나니 마음의 평안이 찾아 왔다. 며칠 후 시험을 치루게 되었고, 문제를 보자마자 너무 놀라서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할 당시 로마서 1장을 들어 강해한 내용을 번역하는 것이 첫번째 지문으로 출제된 것이었다. 로마서라고 하면 청년부 시절에 성경공부 교재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첫번째 지문의 맨 마지막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되어있는 문장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아..하나님! 살았습니다”라고 속으로 외쳤다.  
첫번째 시험 문제를 30분만에 번역했기 때문에 두번째 지문을 번역하는 데는 1시간 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안에 가까스로 완역을 해 냈다.
시험을 다 치룬 후 도대체 어떻게 시험문제에 성경의 내용이 출제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서 정황을 알아보았다.
해마다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독일 현대사 전공 교수님께서 안식년을 맞아 학교를 비우셨고, 그 자리에 중세 독일사가 전공인 교수님께서 출제위원이 되셨다.  아마 그 분이 종교개혁에 관련된 사료를 가지고 수업준비를 하고 계시다가 출제 시간이 임박하니까 아마 보고 계시던 마틴 루터의 글이 담긴 페이지를 그냥 복사 맡겨서 출제를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 교수님께는 우연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짧은 시간 안에 내가 번역할 수 있는 유일한 문제가 출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의 학교 생활의 성패는 하나님 그 분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박사과정 3년차 여름에 미시간 대학에서 페르시아어 연수를 하고 있을 때 암전문의셨던 원종수 전도사님(당시는 교회 전도사로 계셨음)과 교제한 적이 있었다.  그 분께서 가끔 하나님도 시험에는 약하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나는 한 번은 정색을 하고 대응했다.  
“하나님은 시험에도 강하십니다.  단지 특별한 이유 때문에 간여하시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이지요.”

-----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나아갔다.  유학 초기에는 내가 박사과정 중에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결코 박사과정 공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확신을 가졌다.  

한 번은 경제학과 박사과정 중인 후배들을 집에 초청한 적이 있는데 한 친구에게 담배가 해로운데 끊을 생각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친구가 대답했다.
“형 공부는 몸에 더 해로와요.”

주변의 학생들이 공부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자기는 보다 실용적인 길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되뇌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화학과 후배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 후배의 부인은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아내의 분위기가 의기소침한 것이 평소와 다른 것을 감지했다.  

“여보, 부인으로써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부러웠어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긍정을 섞은 묵묵부답…

그 때부터 나는 아내의 학문의 길을 놓고 기도했다. 당시 아내는 나의 학업을 지원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여기고 있었고 아이를 돌봐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어딘가 지원할 것을 대비해서 토플과 GRE (대학원 학력 고사) 시험을 준비하도록 도왔다.  

아내의 진로와 관련된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나를 통해서 왔다.  어느 주일 예배 드리던 중 머릿속에 선명하게 “clinical nutrition”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동 임상 영양이라는 단어가 뒤이었다.

예배 후 아내에게 아동 임상 영양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깜짝 놀라했다. 그런 분야가 있다고 응대했다.  잠시 후 실은 자기가 한국에서 영양학 석사 과정에 입학할 당시 지도교수님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임상 영양학을 전공하신 교수님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경쟁이 생겨서 다른 동료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다른 전공 교수님 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내가 처음 전공을 정할 때 양보하고 포기했던 분야에 대해서 내게 말씀하셨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이 전공을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임상영양사라는 분야가 여성의 전문직으로는 각광받고 있었다.  아내는 전공 배경이 있었으니까 영양사 인턴십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미국 내 임상 영양 과정을 개설한 대학교에서 일년만 추가 과정을 밟으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교지에 나가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자격증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았고, 아내도 헌신한 만큼 아내 몫의 사역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아내는 내 조언을 받아들여 거주지와 가까운 지역 중 가장 적합한 학교로 떠오른 시몬즈 칼리지에서 파트 타임으로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모든 논문 자격 시험을 마치고 난 후인 1999년 여름 나는 부족한 이란어 회화와 독해 실력을 보강하기 위해 미시간 대학교에서 개설된 여름 학기 중동어 교육 컨소시엄에 지원해서 앤아버에 머물게 되었다.  
그 곳에서 뜻하지 않게 몽골에서 사역하다 안식년을 맞아 오신 몽골의 선교사 한 분을 앤아버 한인 감리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병이어 선교회 파송으로 몽골이 문이 열리던 직후 몽골에 들어가서 학교 식당을 개설하고 영양 개선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의 사역을 하셨던 윤향숙이란 분이었다.  
그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시게 된 계기는 미시간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에 부르심이 있음을 보고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몽골로 들어가신 우지성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미시간에 있을 때 앤아버 한인 감리교회를 출석했었다.  그 인연으로 그곳에서 윤향숙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엄청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그 짧은 만남 가운데 있었다.  아내가 현재 몽골에서 소장으로 사역하는 기관인 영양 개선 연구소는 우지성 선생님이 처음 설립안을 내어 이년간 초대 소장직을 역임한 바 있었다.  윤향숙 선교사님과의 만남 가운데 몽골이라는 단어와 영양이라는 단어가 나와 아내의 전문 영역과 관련해서 묘한 배합으로 부각되었다.  

당시 나와 아내는 하나님께서 나와 아내가 함께 섬길 수 있는 곳을 하나님이 주신 사역처로 여기고 가겠다고 기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전공을 가지고 섬길 곳이 주어진다면 하나님께서 가라시는 싸인으로 보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유목 제국과 농경 지대인 이란, 중국과의 관계를 가지고 논문을 구상하고 몽골 제국 시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이라는 나라는 내 논문의 중심무대 중 하나였다.  
미개발 국가의 경우 대부분 국민들의 영양 결핍 문제가 심각하지만, 몽골은 특별히 생태적 문화적인 이유로 육식을 주로 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병이나 성인병에 걸려 죽는 비율이 높아 국민 평균 수명이 낮기 때문에 영양 문제와 관련된 전문적 도움이 절실한 지역 중 하나이다.  
나의 유목 역사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아내의 전문성이 몽골이라는 나라를 통해 하나로 묶이고 있음을 보았다.

그 만남 이후  나는 보스톤에 있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준비를 시키실지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박사 과정에 지원하는 것에 기대도 있었지만 마음에 짐 또한 있었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상황에서 육아와 가사의 부담을 안고 박사 과정의 험한 길을 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아내의 마음 자세에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은 급속도로 아내의 박사과정 지원방향으로 그녀를 몰아갔다.  
일년 전 아내에게 영어 공부 삼아 미국 대학원 진학시 꼭 필요한 GRE 시험을 보도록 권했었다.  기대도 안했고 실력도 그 정도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첫 시험에서 내가 전에 받았던 성적보다도 높은 성적을 얻었었다.  
교회에서 돌봐주던 후배와 선배들이 서로 아내의 박사과정 지원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교수를 연결해 주고 장학금 기회를 알아봐 주고 에세이 작성을 도왔다.  시몬즈의 교수가 추천서도 써주었고, 아내의 한국 모교의 교수님들도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었다.  
아내는 주변에 이끌려 대학 지원서를 냈다.  단 가장 좋은 학교 딱 두군데에만 원서를 냈다.  그녀는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공부할 수 있으며 가장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토록 애쓰는 것이 의미없다고 생각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중 한군데를 하나님께서 정해주시기를 바랐다.  

아내는 원서를 냈지만 여전히 박사과정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고 자신이 없었다.  시간은 지나가 합격 발표 통지가 나와야 할 시점이 보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들로부터 메일이 오지 않았다.  학교에 전화해 보니 “너무 어려운 결정이라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려달라”는 대답을 받았다.  
당시 아내는 지원 학교인 텊스 대학에 가서 자신이 지원한 학과의 교수님들 중에 자신이 원하는 전공의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학과와 교수님들의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고 격려를 받고 또 전공 교수님의 집에까지 가서 대화를 나누고 상기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고백했다.

“여보, 만약 내가 이 학교에서 떨어진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아내는 하나님께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기도했다.  이제는 꼭 그 학교에 가고 싶다는 쪽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의 문제로 고민하던 것을 내려놓고 꼭 그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쪽으로 심경에 큰 전환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그 후 삼일이 지나서 아내에게 합격통지서가 도착했다.  생각해 보니 아내가 공부하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합격이 결정되어 합격통지서가 배달된 것임을 알았다.  보통 결정나서 통지서를 프린트 아웃하고 메일을 부치면 대략 3일 정도가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공부하고 싶다고 자신의 입술로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사실을…  아내는 고백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는 고백을 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시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실 때 먼저 우리 안에 기쁨의 소원을 일으키신다.  따라서 우리를 성장시키거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이 아니라면 우리가 원치않는 것을 억지로 시키시는 것을 억지로 시키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입학 허가를 주시기 전에 아내의 고백을 듣고 싶으셨고 그래서 보름간 합격 여부 결정을 유보하셨던 것이다.


강성민

2005.10.23 01:20:39

안녕하세요. 선교사님. '제삼시'라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우연히 이곳에도오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곳인 MIU에서 사역하고 계신 선교사님
이시더군요. 지금 몽골에서 사역중인 허진영 자매에게서 '역사학'교수
님에 대해서 들었었는데 그 교수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너무나 반갑고 신기하기도 해서 선교사님 간증을 읽고 있는데
위에 글을 읽다보니 '화학과 후배 부부' 부분에서 그 분이 혹시 제 지도
교수님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으면서 너무 신기했어요
. 오늘 처음 와본 선교사님 홈페이지에서 제가 아는 분들과 MIU 소식을
들으니 말이에요. 이렇게 알게 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한 선교사님과도 교제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참. 저는 현재 대전에서 대학원에 재학중인 강성민 형제입니다.^^

이용규

2005.10.23 23:27:07

그랬군요. 허진영 자매가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었군요...
허진영 자매와 화학과 교수 이야기 이미 나눈 적이 있죠. 맞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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