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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앞날을 위한 간구를 들어주시기도 하지만 들어주시지 않기도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앞 길을 인도해 가시는 방식과 관련해서 내가 옆에서 본 두 가지 경우를 가지고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살았던 케임브리지라는 도시는 미국 최고의 교육 도시다.  명문 대학인 하버드와 메사츄세츠 공과 대학(MIT)이 위치해 있다.  그 외에 인근 도시에는 각 분야에 걸쳐 최고의 명문 대학교가 많이 있었다.  따라서 나는 주변의 명문 대학들에 다니는 크리스챤 청년들과 함께 사역하고 신앙을 나누면서 삶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풍부했다.

나와 유학 초기에 신앙을 같이 나누던 절친한 분이 MIT에서 해양학 분야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다.  참 신앙이 좋고 전도의 열정이 넘치던 형제였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박사 논문 자격 시험을 보아야 했다.  마지막 기회였던만큼 간절히 합격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가 다니던 교회 교우분들도 열심히 기도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분은 시험에 떨어졌다.  그 가정의 부부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울러 함께 기도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실망이었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던 것 중 하나님이 듣지 않으셨던 첫번째 경우였기 때문에 무척 실망했기 때문에 나도 솔직히 하나님께 따졌다.

“하나님, 실망입니다.”

그 때 내게는 대학원 과정에서의 실패는 끝을 의미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넘어서는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대해서 볼 수 있는 혜안이 없었다.  
그 형제 부부는 다른 지역의 주립 대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섬세하신 인도하심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부부의 좌절이 회복되기 어려웠다.  
돌아보건대 당시 아내되는 자매분은 신앙을 갖게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 있던 그 형제 분을 소개받고 신랑감을 미쳐 보지 못하고  결혼했다.  그 과정에서 그 형제가 명문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중요한 크레딧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 부분을 다루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의 실패의 과정을 통해 당신에 대한 신뢰를 테스트하시기로 결정하셨던 것 같다.
그 형제에게 더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수년이 지나서였다. 참 아픈 실패의 질고를 거쳤지만, 그 분이 학교를 바꾸면서 의학적인 부분과도 연관된 분야로 방향을 바꾸어서 더 재미있고 보람있게 논문작업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졸업 후의 진로도 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되어 갈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좋은 해양 연구소가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 형제 부부가 MIT와 보스톤에서의 생활을 빨리 내려놓으면 놓을수록 그 가정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가운데 더 빨리 평안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경우에 처했을 때,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우리는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목표를 붙잡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는 만큼 우리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에 구속되고 만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우리의 실패 너머에 있는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편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것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길을 예비하셔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인도해 가시는 경우는 훨씬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중 극적인 경우 한 가지만을 나누고자 한다.  
나와 같이 케임브리지 연합 장로교회를 출석했던 MIT 형제의 이야기이다.   그는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처음 미국에 와서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 중에 페이퍼 작성과 관련해서 몇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느 교수 한 분의 눈밖에 났다.  그 교수는 그 학생이 MIT에 다닐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몇 차례의 결정적인 위기가 그 학생에게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 학교를 다니며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교수가 마침 그 학생의 논문 자격 시험의 위원회 중 한 명이 되었다.  그 교수는 그 학생에게 “너는 내 시험에서 떨어질 것이다”라는 것을 확언했다.  교수가 격려해주어도 준비하기 어려운 시험인데 떨어질 것이 확실하게 보이는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부가 새벽 제단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흘 정도의 기간 안에 주어진 문제에 답하는 “테이크 홈” 시험을 치기 위해 문제를 받는 날짜를 잘못 알고 있다가 문제를 늦게 받는 사태 마저 생기고 말았다.  출제 위원인 그 문제의 교수를 찾아갔더니 시험 날짜조차 모르는 학생이라며 면박을 받기에 이르렀다.  시험이 취소되고 다시 날짜를 기다려 재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암담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물러난 얼마 후 사정을 아는 학과내 비서로부터 안부를 묻는 이메일이 날라왔다.  그 이메일을 받고나서 답장을 쓰려고 했는데 영어 표현에 실수가 생기고 말았다.  
“내가 설령 학교를 그만두는 상황이 생기더라도”라는 의미의 문장을 쓸 때 “even if”가 아닌 “even though”를 쓴 것이다.  “Even though”라는 표현은 밖에 비가 올 때, “비가 올지라도”라고 말하는 식으로 이미 기정 사실을 가지고 가정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반면 “even if”는 순수 가정으로 결과를 알지 못하고 가정하는 것이다.  “학교를 그만둘지라도”라는 표현에 even though를 사용하고 나니 학교를 그만 둘 것이라는 표현이 되면서 편지 전체 내용이 의도와는 다르게 심각한 분위기로 느껴지고 말았다.  

이 편지를 받은 비서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얼마 전 MIT 대학 내의 중국계 박사과정 학생의 자살 사건으로 학교가 발칵 뒤집혔던 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학교의 비상 연락망으로 그 학생을 잘 돌봐주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한 편지를 돌렸다. 교수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이 학교에 가보니 교수들이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격려를 해주는 등 분위기가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더욱이 자신을 쫒아내려던 교수는 어쩔줄 모르며 다정한 말을 건네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재차 주어진 시험문제를 그 학생은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나중에 전에 받은 취소되었던 시험의 문제를 한 번 풀어보려고 했는데 일주일 넘게 시간을 받아도 풀 수 없는 문제였다.
그 학생은 학내 교수 사이의 묘한 갈등 관계 때문에 졸업도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봉직하고 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위기 상황에 있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함으로 평안 속에 거할 수 있다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친밀한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이다.  상황을 보면 피할 곳,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 같은 환경 가운데 떠밀려 갔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을 확인시키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시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광야이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순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까지도 그의 계획 가운데서 완벽하게 이용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무지마저도 하나님은 당신의 인도하심을 이루어가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보스톤에서 어렵게 살면서 유학 준비하던 부부가 있었다.  그들 스스로는 정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다고 보았다.  
하루는 차로 교회에서 집으로 데려다 주고 있는데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스톤에 있으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비교도 되고또 이 많은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요.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보스톤에 와 있는 것인지…?”

나는 그저 위로의 말로 응대했다.
“하나님께서 두 분을 위한 계획이 있으세요.  보스톤으로 부르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단지 지금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요.”

후문에 두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밤새 집에서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일년이 채 안되어서 그 남편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국 서부의 좋은 경영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 후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도 졸업 후 미 동부지역의 큰 제약회사를 거쳐 현재 존슨 앤 존슨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계획이 있으시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먼저 일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위태하게 보이는 인생 길에 크나 큰 위안이 된다.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짐을 신뢰할 때 우리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진리를 알 때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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