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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내게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졸업을 일년 앞두고 하버드 대학에서 열린 국제 중앙 아시아학 컨퍼런스에 낼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내 마음 상태를 직시하게 되면서였다.  
논문 발표를 앞두고 내가 불안하고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내가 왜 떨고 있을까 그리고 무엇이 문제일까를 짚어보면서 이것은 단순히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깊이 잠재해 있는 무언가가 걸려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문제의 전모를 보기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깊이 침잠되어진 동기와 욕구의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나는 뿌리깊은 내 안의 욕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내 안에 나의 최선의 모습만을 보이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가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떨었던 이유는 학계에 첫선을 보이는 병아리로써 이 분야의 전문가들 앞에서 내 연구와 견해를 선보이면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안에는 보이고 싶지 않은 그리고 가리고 싶은 어떤 부분들도 있었다.  내 연구의 약점을 최대로 가리며 장점을 부각시키려고 보니 불안하고 떨렸던 것이다.  
내 떨리는 모습의 배후에 정직하지 않은 동기가 있었다.  나 이상의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하나님 앞에 이 부분을 내려놓고자 하고 보니 이것은 보다 깊은 뿌리를 가진 문제로써 한 번의 고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년전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있어 하고 몰두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나를 향한 시선이나 주변을 의식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었을 때는 없었던 현상인데 내가 한국에 돌아오면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미국 가기 전 한국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었음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의 나를 보는 시선과 평판에 나는 늘 휘둘리고 있었다.  내가 공부를 잘 하고자 하는 열망 뒤에는 일부나마 이러한 나의 외부의 평가와 인정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애썼던 것은 하나님 나라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음을 알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학문을 한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내 숨은 동기가 드러났을 때 그 속에는 내가 영광받고 싶어하는 부분이 섞여있음을 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드러내고 싶은 욕구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고 그것을 계속 은폐하고 있었다.  그래서 쉽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경우 내 깊은 감정은 그 욕구를 따라 반응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나는 내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저도 이것이 제게서 자라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것을 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 뜻대로 그렇게 쉽게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오래 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이 싸움을 시작할 용기를 주세요.”

그리고 끝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이 유학이라는 광야 세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가 배우도록 허락하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졸업을 준비할 때입니다.”  

나는 컨퍼런스에서 평안 가운데 발표를 했고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 시간은 지나갔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약점을 가리려 한다고 해서 가려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명예욕이라고 하는 올무에 걸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라가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약점을 내어놓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려주시고 당신의 영광으로 그것을 바꾸어 주신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이 가려주셔야 진정으로 가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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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의 문제를 보고 그것을 하나님께 넘겨드리고 난 후 나는 졸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분적으로 작업하던 논문들을 엮어서 박사논문으로 체제를 잡아가는 일을 해 나갔다.  졸업 논문 심사를 위한 논문 제출을 4개월 정도 남긴 시점에서 세명의 논문 지도교수 중 한 명이 갑자기 바뀌게 되었다.  새로 지도교수가 된 분은 외부 학교의 교수인지라 처음으로 내 논문을 보게 되었다.  이 분은 내 논문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논리 위주가 아닌 시간 순서로 논문 체제를 변경하는 대수술을 요구했다.  
체제를 바꾸는 것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교수님도 아마 6개월 정도 걸릴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새 지도교수님은 졸업을 예정보다 늦추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시간적으로 볼 때, 논문에 집중하는 시간을 더 가진 후에 졸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하나님과 졸업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졸업을 서두르고 싶은 개인적 욕심은 전혀 없었다.  단지 나에게 사역의 길이 이미 열리고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싸인이라고 보았다.  졸업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고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길을 여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교수님께 대답했다.

“한 달의 시간을 주십시오.  최대한 고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바꾼 내용을 보시고 졸업 여부를 다시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내 믿음의 고백이었다.  졸업을 결정하는 주체는 교수님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확신에서 온 것이다.  그 후 신기한 현상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외국어로 논문 쓰는 작업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책상에 8시간정도 앉아 집중하는 것조차 힘들어 했던 내가 12시간씩이나 앉아 작업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자려고 누웠을 때도 또 거리를 다닐 때도 논문의 틀이 머릿속에서 짜맞추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한번은 논문 한 장의 체제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꿈에 단락 단락이 자리를 이동하며 완벽한 구성으로 맞추어져 갔다.  나는 어서 깨어서 꿈에서 본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컴퓨터에 앞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누가 내 등 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나는 노트북 컴퓨터를 옆으로 비켜놓고 엎드렸는데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하나님.. 내가 뭐길래…”
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내 죄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내게 임하신 것에 대한 감격이 솟았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와 같이 네 학업의 현장에서 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나를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이 네가 내게 줄 영적 예배란다.”

하나님은 그 때 내가 있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있으면서 주님이 그 일 가운데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인정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 그 현장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비극인가?  
한 달 후, 수정한 졸업논문을 교수님께 보여드렸을 때 그 분은 "놀라운 변화"라며 극찬해 주셨다.  내가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에 졸업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나를 이끌어 가셨다.

2004년 6월에 하바드 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초청 강사로 초대되어 올라왔다.  그 뒤의 좌석에는 세계의 뛰어난 학자, 문인, 기타 전문인들이 좌정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그들의 삶이 내게 그리 도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학을 막 결정했을 시기 나는 그들의 삶을 동경했었다.  나도 그들과 같이 학문의 영역에서 존경받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내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삶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내게 확연히 다가왔다.  내가 만약 저들과 같이 저 자리에 서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면 내가 저 자리에 섰을 때 얼마나 허무해져 있을까?  이 사실을 미리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 감사했다.  

졸업식장에서 함께 졸업을 맞이한 내 친구 한 명은 10년만에 졸업하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졸업 그 자체가 그리 기쁘지 않았다. 졸업장 한 장만을 위해 내가 안간힘을 쓰며 유학생활을 보냈다면 이 자리에서 얼마나 허무했을까? 정말 기뻐하며 즐거워 할 일이 있다면 유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깊게 체험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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