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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코스타에서 유학생들로부터 많이 받았던 질문들이 있는데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가 어떻게 해서 몽골을 가게 되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선교 준비를 했는가이다.    

이러한 질문은 요약하자면 내가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된 이유와 선교 준비 과정 그리고 특정 지역을 사역처로 선택하게 된 계기를 묻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코스타에서 최소 이년간의 선교 헌신을 한 후에 특별한 선교 훈련을 준비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기 원하시면 우리를 그에 맞게 준비시키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훈련을 하나님께 직접 받고 싶어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유학 생활이라는 훈련 기간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셨고 준비시켜 가셨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원하시는 방식으로 서있도록 우리의 영적인 안테나를 민감하게 세우는 것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기도하면서 한 가지 하나님께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을 정함에 있어서 부부가 같이 섬길 수 있는 곳을 주시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알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함께 사역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삶 가운데서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로 삼겠다고 기도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몽골이 좋은 사역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논문이 유목 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몽골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영양학을 전공한 아내도 몽골의 아이들의 영양 결핍이 심각함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몽골이 각자의 전공을 가지고 섬기기 좋은 장이라고 보고 기도했다.  
이 지역에 한 번 비젼 트립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2002년에 아내가 여름 방학 두달 반 동안 몽골의 월드 비젼에서 인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그 해 여름 몽골에서 필드 트립을 하려고 예정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 방문 기간에 몽골 수도인 울란바아타르에서 열리는 몽골학 관련 국제 학술 대회에 논문을 발표할 기회도 열렸다.  

우리가 몽골에 가보겠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몽골이 아이 키우는데 안전하지 않냐고 걱정해 주시곤 했다.  그 때마다 우리의 대답은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미국에 있던, 한국에 있던 늘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면 우리는 전쟁 가운데서도 안전할 수 있다.  안전 여부는 사역지를 결정하는 요건이 될 수 없다.

많은 분들이 몽골이 개발되지 않아서 그곳에서의 삶이 불편할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복많은 곳으로 간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복많은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이 없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나누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복의 근원임을 모르고 지낸다.  또 복있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서울로, 강남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가고 싶어한다.  어디가 안전하고 살기좋은 곳인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이 우리가 어느 땅에 있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없이…

몽골에 정탐여행으로 가기 전 잠시 한국에 들르는 동안 동연이를 보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미국 아리조나 주의 호피 부족에게로 단기 선교를 가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먼저 동연이를 데리고 한국에 가서 처가댁에 아이를 일주일간 맡기기로 하고 몽골로 먼저 들어갔었다.  
내가 일주일 후 한국에 들어가서 동연이를 봤을 때 동연이가 내게 울며 매달렸다.
“엄마가 나한테 빠이빠이 하고 혼자 갔어.”
동연이는 이 말을 되풀이 했다.  그에게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후 한시도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동연이를 데리고 책을 사러 서점에 간적이 있었다.  
영국에서 나오는 여행 전문 서적인 로운리 플레닛 씨리즈의 몽골편을 골라들었는데 표지에 사막 사진이 있었다.  동연이에게 물었다.  
“동연아, 너 여기 가고 싶니?”
“아니…”
동연이는 고개를 절레저레 흔들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엄마가 지금 여기 가있는데도?”
“그럼 갈래요.  거기 좋아.”

나는 그 때 알았다.  동연이에게는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사막인지 아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엄마가 그와 함께 있는가였다.  엄마와 함께라면 어떤 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내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환경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곳에 가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가이다.    

몽골에 있는 동안 영양사 중심의 전문인 선교단체인 ‘오병이어선교회’에서 몽골의국립 과학 기술 대학과 합자로 그 대학내에 세운 몽골 영양개선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섬겨달라는 제의를 아내에게 했다.  나도 몽골에서 교수 사역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몽골에서의 사역을 놓고 기도할 수 있었다.

일년 반후에 졸업을 앞두고 몽골로 들어오기 임박해서 하나님께 먼저 오퍼가 오는 곳으로 가겠다고 기도하고 있었다.  마침 그 때 몇 가지 루트를 통해서 몽골 국제 대학교(Mongolia International University/MIU)에서 교수로 와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몽골 국제 대학교는 한국 교회와 선교사가 중심이 되어서 2년전에 개교한 바 있다.  몽골 국제 대학교는 몽골 뿐 아니라 시베리아와 러시아, 중국 소수민족, 그리고 중앙 아시아 지역을 섬기기 위해서 각 미전도 지역의 학생들을 받아서 영어로 교육하고 선교의 기틀을 다지고자 하는 비젼을 가지고 세워졌다.  몽골이 아시아 전 지역을 통해 선교에 있어서 가장 열려 있었기 때문에 학교 사역을 통하여 선교 열매가 맺히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몽골 국제 대학교에 교수로 가기를 수락했을 때, 오병이어 선교회에서 개척한 이레 교회의 담임자가 없으니 교회 사역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이레교회가 교단에 소속되기 보다는 독립적으로 있다가 몽골인 성도들에게 이양되고 나면 그 때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교단 가입 여부를 결정하도록 맡기는 것이 선교회의 바람이 있었다.  목회자 중에는 교단 소속 없는 교회를 맡아서 선교하려는 분을 찾기 어려웠으므로 평신도인 내게 요청이 들어온 것이었다.  

기도 중에 목회도 맡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전혀 사역지를 찾아다니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의 사역을 중간에서 연결하시고 인도해 가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이 일이 무척 벅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목회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응기도 거치지 않고 두 가지 사역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기도하면서 우선순위를 첫째는 가정, 둘째는 학교, 그리고 셋째는 교회로 잡았다.  물론 시간은 교회 사역에 가장 많이 사용할 가능성이 있지만 스케쥴에 갈등이 온다면 우선 순위에 따라 정리하고자 했다.  
나중에 감사하게 된 것은 교회와 학교 사역을 같이 하기 때문에 내가 건강한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교지의 영적 전쟁의 환경에서 학교 사역만을 하면 영적으로 곤고해지고 메마를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교회 사역을 하면서 영적으로 채워지고 충만해짐으로 해서 교회 사역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내가 좋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몽골로 가려고 결정한 것은 많이 포기하고 내려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다지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의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코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마지 못해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자기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마치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이리는 세상 또는 세상의 유혹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리에게 양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게 되면 양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기 어려운 것은 낙타가 바늘 귀 들어가는 것 같이 어려운 법이다.  양이 세상의 유혹이라는 이리에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목자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목자와 함께 있는 것을 택하는 한 양은 안전하다.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사울과 다윗, 그리고 야곱과 에서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그 차이 때문에 다윗과 야곱은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었다.  반면 사울과 에서는 버려졌다.  그 이유는 에서와 사울은 세상이 부르는 넓고 편안하고 쉬운 길을 택했다.  그러나 야곱과 다윗에게는 고난이 주어졌고 오랜 동안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
어느 부자 청년은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다.  우리가 돈의 영에 붙들려 있을 때 예수님을 택하지 못하게 된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편안함을 추구할 것인가 하나님을 추구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좁은 길과 넓은 길과의 사이의 선택이다.  
좁아보이는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갈 때 우리는 그곳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형통함을 소유하게 된다.  넓은 길이 넓어보이지만 사망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있기를 원하시는 곳에 있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 그것이 가장 기쁨이 있는 길임을 유학이라는 광야길을 가면서 체험했기에 또 다른 광야인 몽골로 나아가는 것이 내게는 두려움이나 포기의 길이 아닌 형통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선교 훈련을 받았냐는 것이다.  실은 아내와 나는 선교 단체에 가입한 적도 없었고 선교 훈련을 별도로 받은 적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가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 함을 믿었다.  내가 미국에 있던 한국에 있던 나는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는 학교가 나의 전공 영역이 나의 선교지가 된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에도 선교사로써 살려고 했다.  그랬기 때문에 몽골에서의 삶도 미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당연히 밖에 나가서도 새는 것을 알고 있다.  삶을 사는 방식이나 순종의 모습은 사는 지역이 바뀐다고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파송을 받아 선교사가 되었다고 선교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잠시 타문화권으로 파송과 후원을 받아 선교사로 나아가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몽골에서 돌아와서의 삶 역시 선교사의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별도의 선교 훈련을 받을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지만 (물론 여건이 되면 훈련을 받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실제 그러함을 경험으로 확인했다.  
내가 유학 기간 훈련받았던 것을 선교지에서도 여전히 동일하게 (비록 더 높은 단계에서지만) 훈련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그 분의 성품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선교사가 되는 법을 배워간다.  선교지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이 선교 대상자의 변화가 아니라 선교사 자신의 변화라는 것이다.  

선교사가 하나님 앞에 더 깨어지고 예수님의 인격의 분량으로 자라가는 것이 그 분의 가장 큰 사역이며, 선교사가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거쳐 선교지에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많은 눈물의 날을 지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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