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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길로 인도하심

기도원을 내려와서 그 해 가을 나는 한국 고등 교육 재단에서 실시하는 유학 장학생 선발 시험에 응시했다.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고 동양학부 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이제 유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해서 그 해 말 석사과정 지도교수님께 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예상과는 달리 벽에 부딪혔다.  지도교수님이 난색을 표하시면서 유학을 가는 것을 막으셨다.  

당시 나의 모교의 해당 학과는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분야를 국내에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지도교수님도 유학을 다녀오신 분이긴 했다.  반면 아이러니칼하게도 내 전공 분야에 관한 한 국내 교수 여건이 못할 것이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유학 가고 싶은 이유는 단지 전공만이 아닌 새로운 세계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접하면서 새로운 언어와 시스템 하에서 지도받고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교수님이 제시하는 국내에서의 학업 가능성이 나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반면 좋은 추천서 없이는 미국 대학에 지원할 때 큰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난감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 유학의 길을 열어놓으셨다고 하셨지요?  왜 내게는 닫혀져 있는 것같이 보이나요?”
당시 나는 학문의 길에 그리고 유학의 길에 지도교수의 입김이 결정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왠지 작고 간접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한 동안 현실과 상황을 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기간 동안은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을 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도 교수님은 좋은 석사 논문 쓸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답을 미루시며 독일로 일년간 안식년을 떠나셨다.  그 일년간은 하나님께서 나를 기도로 준비시키시고 내 믿음을 점검하시던 기간이었다.

지도 교수님께서 일년 뒤 독일에서 귀국하신 후 나를 연구실로 부르셨다.  내가 유학을 가고 싶으면 페르시아사나 인도사와 같은 중동 지역사로 전공을 바꿔서 나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하셨다.  그 분야를 하게 되면 내 유학의 욕구도 충족되고 학과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맞는다고 생각하셨다.  한국에서는 연구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배워와야 하고 또 새로운 분야를 한국에 도입하는 선구적인 일이므로 유학의 보람도 있을 것이라는 논리셨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 길을 가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전제는 깔려있는 것이었다.  어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외국 학생을 미국 대학의 중동학과에서 받아줄 것인가가 문제였다.  마치 불문과에서 7년간 공부했던 학생이 박사과정을 새로이 중문과로 진학하려 할 때 과연 어떤 교수가 신뢰하고 받아줄 것인가? 또한 과연 준비없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더욱이 중국은 나의 첫 사랑이었기 때문에 6년째 중국어를 손에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고전 중국어를 독파하기 위해 사서삼경까지 공부했었는데…  과연 새로운 분야를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 동안 피땀흘려 공부했던 것을 버려두고 새 것을 잡아야만 하는 것일까?  

많은 질문이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때 문득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 전공을 위해서라면 유학 대상국을 선정함에 있어서 미국도 좋지만 영국도 좋지.”

이 말은 내가 전에 들은 적이 있던 말이다.  기도원에서… 나는 무언가 하나님이 힌트를 주신다는 암시를 받았다.  시간을 달라고 교수님께 말씀 드리고 나온 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어느 날 예배 중에 히브리서 11장 8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다.  말씀 중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라는 구절이 클로우즈 업 되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함으로 결단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믿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렇다.  믿음을 내가 익히 아는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도하심을 따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그런 길을 선택해 가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되었다.  지도교수님은 그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교수님께서 독일에 가 계신 동안 한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을 믿고 주로 고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자신의 전공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싶다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함께 독일에 계셨던 분을 통해 전해들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 가운데 개입해 계셨던 것이다.

미국의 대학교로 진학을 위한 지원을 하면서 혹시 나중에 중국사나 중앙 아시아로 전공을 바꿀 수 있는 곳도 두 군데 정도 안전장치로 함께 지원했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확신이 없었다.  하나님이 징표를 몇 가지 주셨지만 그것에 내 인생을 거는 것이 불확실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나님은 그 곳들로부터는 합격통지를 받지 못하는 쪽으로 인도해 주셨다.  돌아갈 길을 차단하셨고 아울러 내가 갈 길이 한 곳임을 분명히 해주셨다.  

그 당시에는 내가 왜 중동사로 전공을 바꾸어야 했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순종했다.  내가 졸업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희미하게나마 그 이유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하고 선교지로 향하게 될 즈음해서야 하나님께서는 내가 왜 중동사를 공부해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난 후 순종을 요구하시지 않음을 경험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라고 시편 기자가 고백했던 것 같이 주의 말씀은 내 발 앞에 가야할 곳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나 저 멀리 있는 곳에 대해서는 방향만 제시하실 뿐 그곳에서 실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가리시고 보여주시지 않으신다.  오직 순종으로 그 길을 택해 걸어가는 과정에서만 볼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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