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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nosuchjesus.com(게시일자 2006.12.23)

[질문]

저는 교회에 성실히 다니고 있으며 또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죄인인 저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이 저를 휘두를 때가 생깁니다.

그런 갈등이 생기는 데는 현실의 외로움과 가난도 한 몫 거들고 있습니다. 친구들보다 사회적으로 많이 뒤진 것 같고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도 못한다 싶은 마음이 들면 저 자신의 무능력이 너무 싫고 신자라는 신분에마저 불신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도 고침을 받은 여인이나, 세상적인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바울 같은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은 나에게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나는 너무 정도가 심하지 않는가?
난 왜 이리도 삶의 문제와 외로움의 문제로 허덕이고 있나.... 내가 진짜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있는가?
온갖 의심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배하지 않기에 이렇게도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지 숱한 의문들과 고뇌로 기도하는 것조차 포기하게 되기 일쑤입니다. 믿음으로 이겨내라는 단순한 대답 말고 뭔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을까요?

[답변]

질문자님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세밀한 답변을 드리기는 힘들지만 원론적인 면에서 간단하게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신자가 겪는 모든 영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사실은 본인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 말고는 없습니다. 그게 정답이자 궁극적인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현실이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실망에 휩싸여 기도마저 되지 않는데 기도하라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어쩌면 모순 같이 여겨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슨 창이라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있는가 하면 무슨 방태든 뚫을 수 있는 창이 있다는 것은 아예 성립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도무지 안 되는데 “기도하라”를 정답이라고 제시하면 논리가 맞지 않는 듯합니다.
  
궁극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은 반드시 하나님께로만 나옵니다. 따라서 아래에 제가 드리는 말씀을 실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여기지 마시고 현재 질문자님이 기도가 도무지 안 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 정신적, 영적인 장애들을 제거하는 대책, 그것도 절대적인 정답이라기보다는 여러 대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절대적인 대책이 아니며 본인이 해결하라고 해서 상담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뜻은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는 결국은 신자 개인이 하나님과 끝까지 씨름하여 해결하여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해결책과 은혜는 다 각기 다르다는 뜻입니다. 정작 당사자보다 그 사정을 더 잘 아시는, 아니 그 사정을 현재 조성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신자는 반드시 그분과의 일대일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합니다. 또 그럴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길은 기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이 현재 겪고 있는 기도가 안 되는 장애들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  삶의 문제와 외로움과 가난과 무능력의 문제, 자신과 자신의 믿음과 대한 불신” 등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영적인 상태를 바로 세운다기 보다는 기도를 막는 장애들을 없앤다는 관점에서 가장 먼저 이 홈페이지의 “하루를 열며 사이트” #241 “요동치더라도 감사하라”의 글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믿음을 ‘적용’하는 부분을 혼동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안 될 정도로 현실이 어렵고 영적으로 궁핍해 있어도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근본적인 믿음은 큰 변함이나 하자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도가 안 되고 실망에 빠졌다고 자신의 믿음 자체부터 부인해선 안 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며 성도를 인도 보호한다는 사실만은 당사자의 믿음의 적용 심지어 그 믿음과도 관계없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문제를 겪는 모든 신자는, 그 문제의 종류나 내용에 관계없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이 진리를 온전히 다시 재확인하는 작업이어야만 합니다.  

만에 하나 이 사실조차 잘 믿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은 제쳐두고 기드온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어떤 표징을 달라고 몇 번이고 기도하고 또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온전히 믿어질 때까지 모든 방도를 강구해서 씨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면 하나님이 변함이 없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지 않습니까? 전지전능하시고 우주만물과 인간의 생사화복을 그분만의 뜻과 계획대로 주관하고 계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아니며 또 우리의 믿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지 않습니까?

때로는 성도에게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이유 없어 보이는 환난에 밀어 넣더라도 그분은 옳고 정당합니다. 사실은 그런 속에도 반드시 그분의 선하고 의로운 뜻이 있으며 반드시 그분의, 신자의 것이 아닌, 영광은 결국에는 드러나지만 신자가 그 당장에는 잘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절대로 영원토록 신실하며 그분에게 어떤 문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신자 쪽입니다. 특별히 무엇이 문제입니까? 자꾸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탓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큰 하자가 없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뜻과 계획, 더 정확히는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 주었으면 바라는 기대치와 하나님의 그것, 즉 현실에서 실제로 진행되어져 가는 상황과 일들이 서로 도무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는 아무런 오류나 실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자가 자신의 기대치를 그분의 뜻에 조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분의 뜻을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자로선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리라”(잠3:6)는 말씀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현재 일어난 아무리 나빠 보이는 일에도 하나님의 인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기대치를 조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대치를 조종한다는 것이 단순히 의지적으로 긍정적, 적극적, 낙관적, 능동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신자니까 목표치를 최대한 낮추어 무조건 가난하게 살고 손해 보고 외로운 것이 당연하다고 포기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또 다른 종교에서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이니까 가난해도 부유한 면이 있고 외로워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만 바꿔 먹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연약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는 오히려 더 풍부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 확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을 발견해 내고 귀하게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가난 가운데, 외로움 가운데, 때로는 심령이 피폐해져서 온전히 낮아진 가운데도, 당장은 몰라도 반드시 선과 의와 생명이 말하자면 좋은 점이, 하나님의 축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사실을 확신하기에 그런 소망을 품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지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그 가난과 외로움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현실적 형통이 아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현실적인 가난과 외로움이 없어지지 않아도 말입니다.

요컨대 인간은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라도 자신의 기대치를, 구체적 수치로 계획을 세워 놓지 않더라도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은근히 바라는 것이 반드시 있음, 부수지 않는 한 믿음과 상관없이 그 기대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낙심이 되며 기도와 말씀에 힘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내 기대치는 남들보다도 훨씬 낮은 데도 안 이뤄준다는 불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낮은 기대치라도 여전히 자신의 욕심이 내포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 불만마저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자신을 부인하고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이 죄나 탐욕 같은 나쁜 것을 부인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신자가 되면 죄를 안 짓고 검소하게 살려는 준비와 헌신은 어느 정도 되어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보다는 신자가 의식하든 못하든 하나님께 바라는 은근히 바라는, 양적 질적으로 따져 높든 낮든 간에, 기대치와 그것을 유발하는 자신을 중심에 세우려는 본성을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해야만 주님을 바로 따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러지 못하면 범사에 주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범사에 주님의 절대적 주권보다 자기 기대치나 본성이 우선되거나 그 주권의 발동을 방해하고 있다면 그분의 은혜를 제대로 받을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핵심이자 영적 문제의 가장 기초적인 해결책이 됩니다. 그러나 그 주권의 인정도 어차피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까 마음에 안 들어도 인정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고 숙명론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즉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진짜 완전히 인정하기에 기꺼이 따르며 여전히 힘든 그 상황 가운데도 은혜를 발견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이 자라지 않으며 현실이 힘들 때마다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생은 힘든 일은 당연히 자꾸 반복되게 되어 있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예에서도 보듯이 지상 최고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첫 출발은 어떤 면에서 죄를 씻고 영적으로 신령해지는 것 이전에 바로 인생이 고난의 연속이라는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숙하고 강한 믿음도 열심히 기도하여 힘든 일을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힘든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반응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나아가 정말 많은 신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은 신자도 열심히 현실적인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정말로 더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현실의 가난과 외로움은 사실상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기 이전에 본인이 직접 노력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대인관계의 폭도 넓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여러 취미 활동과 대화술 등에 관심을 가지고 개발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뼈 빠지게 일하며 돈도 벌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 신자의 믿음이 동원되어져야 할 부분은 가난과 외로움 자체를 하나님더러 해결해 달라고 기도로 매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그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의지와 믿음을 주시고 공허한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그것들을 극복해 나가는 방안과 지혜와 또 되어져 가는 여러 상황들을 두고 하나씩 세밀하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또 돈을 벌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선하게 벌되 내 적성과 은사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단 한 푼을 벌더라도 오직 하나님이 주신 소득이기에 감사와 기쁨으로 그 돈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건대 이런 부분에서도 자기의 기대치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가야 하며 또 바로 그런 문제부터 심각하고 진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가진 모든 문제를 전부 뭉뚱그려서 하나님에게 맡기고 뚝딱하고 해결해달라고 해선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씩 하나님과 함께 해결해 나가길 소원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꼭 종교적인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바로 이런 사소한 문제부터 기도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실질적으로 그분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기도는 당장의 문제 해결을 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문제 해결의 지혜를 얻어서,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범사를 이끌어가는 모습 가운데 그분의 뜻을 깨달으며 자신의 기대치를 깨트리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주신 뜻으로 본인이 시행할 힘을 얻고 또 시행한 결과를 들고 와서 다시 주님께 보고하고 새로운 시정 조치를 받아 시행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생기는 불신도 앞에 말씀드린 이런 깨우침과 실행이 먼저 이뤄지기 전에는 깨트리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간단하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데 영적으로 좋아지기는 너무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현실을 고치거나 기존의 현실 가운데 자기가 영적으로 잘 반응하는 것 두 가지뿐이지 않습니까? 물론 둘 다 병행하기는 해야 하겠지만 계속 고난이 이어지는 과정 중에는, 또 한 고난이 끝나도 다른 고난이 겹치기에 당연히 그 고난에 어떻게 내가 반응할 것인가라는 자신만의 신앙적인 원칙을 정해 시행하지 않으면 계속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상담을 받고,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말씀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바뀌어진 새롭고도 귀한 정체성에 관해선 성경은 수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얻게 된 신분과 위치와 소속과 권능은 너무나 대단합니다. (이에 대해선 이 홈페이지의 “좋은 글 좋은 책 사이트”의 #29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를 참조해보시고 또 그 책을 직접 읽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난 체험들 가운데 상처 받은 것들, 열등감들, 성격이나 기질 같은 여러 요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님 안에서 바로 세우는 작업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서 관련 책들을 읽거나 내적 치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내용들을 테크닉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영혼의 문제는 반드시 기도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세미나에 참석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도 하나님과는 계속해서 씨름해야 합니다. 대신에 책과 세미나에서 알게 된 사항들을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적용해 가면서 실제적인 문제를 들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실체를 완전히 발가벗겨 십자가 앞에 과감히 드러내고 오직 그분의 긍휼만을 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그런 작업도 사실은 현실의 실제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자칫 또 다시 공허해질 가능성은 상존합니다. 그래서  질문자님 본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징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또 그러도록 끝까지 씨름하라고 한 것입니다. 실망이 들 때마다 수시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말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너무 자신의 문제 전부를 두고 자신의 믿음의 문제라고 몰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현재 겪고 있는 문제 전체를 뭉뚱그려서 단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말하자면 “나는 왜 아직도 이럴까? 내 믿음은 어디에 갔는가? 도대체 까닭모를 공허는 언제 없어지나?” 식으로 한없는 실망에 빠지기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사단이 바라고 노리는 것입니다. 그런 실망 자체를 믿음으로 없앨 수 있고 또 앞으로도 아예 안 생길 수 있으리라고도 절대 기대해선 안 됩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구할 것은 문제 자체의 해결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여야 합니다. 또 바로 그럴 수 있는 가장 좋은 현실적 대책은 자신의 기대치를 조종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렇게 조종하려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씩 구체적으로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의 작은 문제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질문자님을 향한 너무나 큰 사랑과 은혜를 반드시 발견해 내셔야 합니다.  

여러 큰 문제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도 우선에는 그것들을 몽땅 잊어버리고 아주 작은 문제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표를 받아내는 씨름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자신의 믿음을 한껏 높여서 전부를 해결하려 들거나, 또는 큰 문제부터 해결하려 들지 마십시오.

지금 같은 끝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 계단씩 차근히 올라오는 것이지 그곳에서 날개 달고 바로 비상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원에 가서 백일 금식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완전히 죽게 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허용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자들과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알콩달콩 서로의 사랑과 신뢰를 쌓아가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그렇게 한 계단씩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문제도, 산더미 같은 환난들도 어느 듯 다 해결되어 있을 것이며 자신에 대한 불신도 말끔히 없어집니다. 그 때에는 내 문제 해결이 아닌 이웃의 영적인 평강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다른 큰일에 자신의 전부를 기꺼이 헌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 권면이 잔소리가 되거나 혹은 또 다른 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힘을 내시고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맛보게 되시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맑음

2006.12.30 16:26:54

제게 너무도 적절한 좋은 글 퍼 올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참으로 신실하신,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심으로 마음을 다해
답을 달아 주신 글입니다. 여러번 읽고 많이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영혼이 연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징표를 보여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한 조언대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의 홈피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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