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에 일본 코스타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와서 주일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훌륭한 목사님, 강사 분들과 교제했지만 그곳에서는 성령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몽골에 돌아와서 우리 허름한 교회에서 소박한 교인들을 보니 다시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시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 있어야 충만해지는 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요한 교회의 김규동 목사님은 일본 적군파의 암살 테러로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던 분입니다. 그 테러 결과로 적군파가 몰락하게 되었지요. 그 분의 목숨을 건 헌신 때문인지 그 교회는 목사님을 경외하고 주의 종을 극진히 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강사들에 대해 지극히 공대하는 것을 보면서 선교사 출신인 저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아 불편할 정도였지만 영적 리더의 헌신이 이러한 존경을 이끌어 냈다는 점을 깊이 느꼈습니다.
코스타 기간 내에 일본 현지인 700 여명 그리고 한국 유학생 2200 여명이 모였습니다. 약 95 퍼센트는 요한 동경 교회와 일본 각지에 퍼져있는 요한 교회의 지교회 출신들이 모였습니다. 한 교회 수련회인 셈이었지요. 그들의 헌신은 대단했습니다. 집사님 20 여분이 이 3000 여명의 식사를 도맡아 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봉사만 했지만 이들도 100불 정도의 회비를 전액 납부했습니다. 다른 헌신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한 시간의 전체를 위한 시간에 선교의 현장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겪은 체험을 나누었습니다. 누구의 평에 의하면 학생들 보다는 강사분들에게 더 임팩트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일본에 있는 동안은 상담과 세미나 강의 등으로 시달렸습니다. 코스타 장소에서 돌아온 날 밤에는 요한 동경 교회의 철야에서 말씀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요한 교회의 김규동 목사님은 지독하게도 청년들이 동경에 돌아오자마자 곧 이어서 코스타 마무리를 위한 교회 자체내 철야 예배를 했습니다. 행사는 그 이후의 성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행사 자체를 위해서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집회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마무리 시간을 가진 것이지요. 무척 많은 청년들이 피곤을 무릅쓰고 집회에 참석해 있었습니다. 네 명의 남은 코스타 강사들이 돌아가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도 30분을 말씀 전하는데 짧게 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30분을 넘겨 말씀을 전했습니다.
특기할 일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맨발 할아버지의 비디오를 찍은 김우현 감독을 북경 코스타에 이어 일본에서도 만났는데 그 분이 이번에 낸 "애통하는 자" 책자에서 그 분과 저의 북경에서의 만남을 서너 페이지에 걸쳐 기록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북경에서 그 분에게 끌려가 인터뷰를 한 시간 가량 했는데 그 분이 그 만남이 자신의 프로젝트의 전환점이 되었다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며 무척 즐거워하셨는데 그 내용을 책에 담은 것 같습니다. 그 책을 보내주신다니 그 때 가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김 감독님은 자신이 운영하는 버드나무와 제 3시 사이트에 제 홈페이지도 링크시켜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몽골을 방문해서 제 선교 현장과 몽골의 사역을 비디오에 담아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조만간 오실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목사라고 불러서 일일이 정정해 주는 수고가 있었습니다. 특히 LA 사랑의 교회 김승욱 목사님은 64년 생이면서도 저를 "선배 목사"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습니다. 아마 일년새 얼굴이 많이 타고 고생한 빛이 보여서 그런지 저를 한참 나이든 사람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안요한 목사님은 마지막 사역지로 세 군데를 놓고 기도하시는데 그 중 일순위가 몽골의 맹인 사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조만간 연락하시기로 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그 외에 많은 강사분들이 몽골에 가서 보고 싶다는 소원을 피력하셨습니다. 이 분들이 몽골에 오시면 몇몇 교회가 연합해서 집회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에서 저를 섬겨주신 많은 지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