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에게서 배운 것
서연이가 미국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두 주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전혀 언어가 다른 낯선 환경이 아이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서연이는 유난히 스스로가 환경을 통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아이인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에 던져졌다는 사실이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서럽게 울었습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말했습니다.
“서연아, 너희 학교 너무 좋지 않니? 음악실도 있고, 컴퓨터 실도 있고 카페테리아와 도서관도 있고 실내 체육관도 있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유치원인 것 같아.”
아이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야… 하나도 안 좋아… 나는 몽골에 있는 MK 스쿨이 더 좋아…”
저는 처음에는 의아해졌습니다. 환경적으로 보면 몽골의 한국 선교사들을 위해 세워진 MK 스쿨은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운동장도 없고 교실도 비좁고 공간이나 시설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좁은 교실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좁은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합니다. 미국 학교에서는 자기를 이곳 저곳으로 끌고 다니는데 그것이 싫답니다.
아이가 왜 몽골에 두고 온 학교가 더 좋다고 말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두고 온 친구와 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따뜻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담겨있고 추억이 있는 현장입니다. 아이의 기준에서 학교의 좋고 나쁘고의 기준은 시설이나 교육 수준,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는 환경 등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였습니다.
실은 저 자신 몽골 국제 대학교에서 사역하면서 학생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좋은 시설과 여건을 마련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몽골 국제 대학교가 참 좋은 학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안에 좋은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며 사랑을 담아 가르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몽골 국제 대학교는 특별한 학교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 서연이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그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 미국에는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오신 교민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 교육을 위해 와서 생존을 위해 버겁게 일하는 가운데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해서 탈선의 길을 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나쁜 친구들을 만나고 마약을 접하고 술을 마시다가 음주 운전으로 또는 마약 복용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회 중에 만나게 되는 어머니들의 하소연을 접하면서 마음이 아프기 그지 없습니다.
많은 크리스천 가정의 이세들이 교회를 더 이상 출석하지 않는 것도 부모님들의 아픔이 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그저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을 자녀 교육에 있어서 최상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그것을 이루었는데 그 결과 그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기보다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학교에서 인본주의적인 사고를 습득하고 그것을 가지고 부모의 신앙의 문제점들을 재단하고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부모를 떠나 기숙사에 살면서 세속적인 가치관을 습득하게 되고 그들의 삶은 급속도로 타락하게 됩니다.
교실에서의 인본주의 교육, 기숙사 친구들의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생활 등을 접하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신앙을 떠나고 부모 세대의 정신적 유산을 부담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가 원하던 세속적 성공은 이루었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된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며 가슴이 아픕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성공이라고 여겼던 그 영역이 결국 자녀들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부모들이 놓쳤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의 원인은 부모님들의 가치관과 우선 순위가 복음적인 기초 위에 서있지 않았던 점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때로는 무엇이 정말 소중한 것인지 모른 채 자녀들에게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 부분에서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서연이의 학교 적응을 위해서 우리 부부는 작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녁마다 아이는 우리에게 학교에 기쁘게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인도네시아 교회의 어린 아이들의 기도에 대해서 아이들과 나누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어린 아이들이 여러 나라를 위해서 중보 기도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가 그 날 무릎을 꿇고 엎어져서 따로 기도하고 나더니 눈가가 젖어있었습니다. 그 날 밤 아이는 자기가 지어 부르는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다음 날 서연이는 문득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셨나 봐요. 이제는 학교 가는 것이 무섭지 않아요.”
아이에게도 이제 서서히 믿음이 들어가면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연이와 서연이는 여전히 이따금씩 몽골에 돌아가고 싶다고 제게 말합니다. 친구들이, 그리고 추억을 만들어준 관계가 그리고 집과 이모와 삼촌들(몽골 국제 대학교 사역자)이 그리운 것입니다.
저는 일부러 서연에게 말합니다.
“서연아, 세계에서 미국이 제일 좋은 나라래…”
서연이는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아니야… 몽골이 세계에서 제일 좋아…”
서연에게는 몽골이 가장 좋은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아이를 그립게 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