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중보기도에 올린 기도제목 “상한 심령으로”에 대한 응답을 오늘 금요기도 가운데 받았습니다. 오늘 그 가운데 통곡의 눈물이 흘렀지요.
마침 오늘 금요 예배 설교를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모습 가운데 버려두었던 인정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전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신 이유는 교회에서 거룩하고 경건해 보이는 겉사람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부패하고 더러운 우리의 속사람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실은 그 설교가 나를 향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채…
그리고 함께 흩어져서 기도했습니다. 기도 가운데 오늘 하루 눌려있고 기분이 가라앉았던 내 모습을 하나님께 내어놓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교인들의 반복되는 넘어짐과 변화없는 것 같이 계속되는 허물된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어 했던 이유는 내가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내 사역의 열매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사역의 열매를 기뻐하고 자랑하는 만큼 부족하고 한심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불편해 했던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목회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이상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다 보면 제 기준에 맞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게 마련이지요. 실은 그런 모습과 허물을 인정하고 품어주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목회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실은 내가 이레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나의 의로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깊숙한 곳에서부터 통곡이 흘러나왔습니다. 영혼이 눈물로 적시어지는 울음이었지요.
기도 후 다과를 나누는 시간에 우리 교인들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의 가장 허물된 모습을 받기 보다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잘못을 고백하고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 하면서도 눈물이 많이 나왔지만 마음엔 평안이 흘러넘쳤습니다. 목회에 대한 새로운 눈이 뜨임을 느꼈습니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지 나의 사명이 아닙니다. 내 사명은 그저 그 부족한 모습을 부둥켜 안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이집사님 이레교회 성도님들을 품에 안고 씨름한 날들이 이제 일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성령하나님께서 탄식하며 함께 기도하셨지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집사님이 안타까와 하는 그 이상 성령님의 애통함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늘 그래왔지만 저는 요즘 성령의 애통함을 깊이 대면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오랜세월 경험하며 흘린 눈물 중에 성령의 애통함을 인한 눈물이 가장 아팠어요. 말로는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그렇게 성령하나님은 영혼들을 바라보시며 지금도 아파하시며 탄식하시며 기도하시지요. 그 마음을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그 눈물을 대신 흘리기를 원합니다. 아픈 만큼 위로가 크기에 기쁘게 자원하여 그 아픔을 대신하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위로가 풍성하게 넘치길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