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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열매를 보기 원한다.  순전히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섬김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관심이 우리에게는 있다.  
예를 들어 목회자에게는 교인 수가 하나의 중요한 열매로 인식되곤 한다.  또 어떤 목회자에게는 교인들의 반응이나 성숙이 중요한 열매로 여겨진다.  많은 사역자들이 사역의 결과에 집착한다.  그로 인해 사역의 결과가 가시적이지 않을 때 좌절하기도 하고 또 사역 이후 공허함에 시달리곤 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의 반응이 어떠한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당시 나는 아내에게 오늘 설교 좋았냐고 묻곤 했다.  그러다가 느낀 것은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설교하기 보다는 설교 후의 반응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부터는 결코 아내에게 설교가 어떠했는지 묻지 않았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설교하려 했고 교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설교 후에는 내가 설교했다는 사실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했다.  내가 결과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나는 그것에 묶이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잃게 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인 것이다.
교회 사역을 하면서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늘 묵상하려고 했다.  나는 언제든지 하나님이 싸인을 주시면 교회를 내려놓을 마음으로 목회를 했다.  목회를 하면서 교회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결과에 자유로우려고 노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를 붙드는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십자가와 죄에 대한 설교를 몇 주간 계속했어도 예상과는 달리 교인들이 줄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역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경계시키신다. 사역의 열매가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전하기를 원하신다.  사역의 동기 가운데 자신이 드러나고자 하는 욕구가 섞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무엇이 섞여있는지를 정확히 보시고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  내 대외 사역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내 안에도 내 것을 즐기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지적해 주시는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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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 우리 가정이 몽골에 온지 1주년을 맞았습니다.  가족 모두가 루흐트라는 휴양지에 가서 하루를 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전전날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웹을 관리해 주시는 수정씨의 메일에 따르면 제 홈페이지가 해킹 당해서 홈페이지가 서스펜드되고 난 후 게시판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간 하나님과 가졌던 많은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제게 이 일을 통해서 무언가를 말씀하신다고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껏 안전했을 뿐 아니라 광고도 거의 뜨지 않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제 홈페이지가 해킹 당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경고하심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몽골 선교를 방해하는 사탄의 계략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제게 무언가를 경고해 주시는 싸인이라고 받았습니다.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는 이유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가지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가 제 홈페이지를 가지고 나의 영역을 구축하고 내 성을 쌓으려 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 해킹 사건은 홈 페이지가 "제 3시"라는 사이트에 링크된지 며칠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지요.  일본에서 저는 김우현 감독님이 운영하는 크리스챤 사역자 분들의 게시판이 운영되고 있는 그 사이트에 제 홈페이지를 링크시켜 달라고 김 감독님께 부탁했었지요.  물론 몽골에서의 하나님이 일하시는 많은 내용들을 주변에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홈 페이지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의 공명심이 슬그머니 그 자리에 끼어들어가 있음을 본 것이지요.

새벽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또 내려놓았습니다.  나의 것과 하나님의 것 이 백지장 하나 같은 차이를 분별해 내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기도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기도 중에 제 홈페이지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제 일년간의 수많은 사역 일기가 담겨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제가 하나님의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면 하나님께 내어드리겠다고...  그렇게 기도하고 나니까 홈페이지에 담은 기록들은 내 삶과 사역에 그렇게 소중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기록이 온전히 하나님 나라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이 사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나를 나의 숨어있는 야심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나를 쓰기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그 무렵 규장에서 보내주신 김우현 감독님의 팔복 시리즈 두 번째인 "애통하는 자"의 비디오와 책을 보면서 더 깊이 이 부분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인터넷에 접속하고 보니 홈 페이지가 살아났더군요.  수고해 주신 수정씨에게 감사하고요.  그리고 나를 돌아볼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홈페이지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기도가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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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가 사역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하시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거룩한듯 보이는 것일지라도 어떤 욕구에 묶여서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심보다 더 커질 때, 우리는 그것에 묶여 구속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묶이는 그곳에 항상 사탄이 우리에게 올무를 걸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최근에 깨달음을 주셨다.  두 달전쯤 교회 교인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늘 실족해 넘어지고 그 결과 생기는 문제들을 안고 살아감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  그 문제를 놓고 홈페이지에 기도부탁을 올렸다.  그러던 중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만지시는 것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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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보기도에 올린 기도제목 “상한 심령으로”에 대한 응답을 오늘 금요기도 가운데 받았습니다.  오늘 그 가운데 통곡의 눈물이 흘렀지요.

마침 오늘 금요 예배 설교를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모습 가운데 버려두었던 인정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전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신 이유는 교회에서 거룩하고 경건해 보이는 겉사람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부패하고 더러운 우리의 속사람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실은 그 설교가 나를 향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채…

그리고 함께 흩어져서 기도했습니다.  기도 가운데 오늘 하루 눌려있고 기분이 가라앉았던 내 모습을 하나님께 내어놓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교인들의 반복되는 넘어짐과 변화없는 것 같이 계속되는 허물된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어 했던 이유는 내가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내 사역의 열매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사역의 열매를 기뻐하고 자랑하는 만큼 부족하고 한심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불편해 했던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목회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이상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다 보면 제 기준에 맞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게 마련이지요.  실은 그런 모습과 허물을 인정하고 품어주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목회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실은 내가 이레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나의 의로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깊숙한 곳에서부터 통곡이 흘러나왔습니다.  영혼이 눈물로 적시어지는 울음이었지요.

기도 후 다과를 나누는 시간에 우리 교인들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의 가장 허물된 모습을 받기 보다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잘못을 고백하고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 하면서도 눈물이 많이 나왔지만 마음엔 평안이 흘러넘쳤습니다.  목회에 대한 새로운 눈이 뜨임을 느꼈습니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지 나의 사명이 아닙니다.  내 사명은 그저 그 부족한 모습을 부둥켜 안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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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깊은 통찰력은 찌름이라는 칼과 함께 주어진다.  우리가 그 칼을 받아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욕구와 묶인 부분들을 찌를 때, 하나님의 위로와 자유함이 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찌르심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묶임 가운데서 놓임을 받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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